저 녁 녘
리 진(1930~ )
저녁녘/ 갑자기 타오른 노을
구름발과 함께 걷히고
남빛 짙어가는 하늘에서
여기저기 / 한줌씩
깜빡이는 별
이웃집 외양간
왼쪽 초마가
괜히 더 검어 보인다 하였더니
이윽고 그 그늘에서
누르스름한 / 초생달이
뿔을 내미네
아 나는 몰랐었구나
이 세상 / 한 강의 기슭에서는
달이 나 없이 둥그레지고
나 없이 이지러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전에 몰랐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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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참으로 까마득한 예전의 그날 저녁녘
아득한 외로움에 흐느껴 울었던 그 저녁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퇴근후 버스를 타고 석관동으로 갈 때,
어느 집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보고
갑자기 물큰한 무엇이 나의 온몸을 휘몰아치고
뭐랄 사이도 없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때,
아버지와 엄마,
진숙이와 현숙이의 두 여동생
그들이 지금쯤 연기를 피워올리겠다는 사실에
엄마의 부지깽이속에 밥이 노르스름하게 뜸이 든다는 생각에
조용히 뛰어다니며 불을 밝힐 진숙이의 재바른 손길이,
앞뒤를 돌아보시며 하루를 마감하실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가,
동네 아이들과 놀음에서 집으로 다가들 현숙이의 발빠름이..
못견디게 그리워지는건 저녁녘의 연기탓이었고
집으로 다가들게 만드는 노을탓이었고
좁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시린 마음탓이었고
마주앉아 찬없는 밥상을 마주할 언니와의 설움탓이었음이..
그날이후로
퇴근길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 준비된 마음으로 눈물을 쏟았고
쏟아진 눈물만치 정화(淨化)된 내 안의 나를 정리하는 법을 알았고
저녁녘이면 유난히 서러워지는 나를 알았고
가족의 의미를 한꺼번에 알아버린
내가 있었음을...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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