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주왕산을 다녀오다

여디디아 2006. 9. 11. 15:54

 

 

 

언제부턴가 교보문고에서 떠나는 문학기차여행이 유일한 樂이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얽매인 몸이라 여행할 시간과 여건이 마땅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교보문고 문학기차여행은 그런 나를 설레이게 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가득하게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번엔 무박이일의 여행이다.

청송에 있는 주산지는 인터넷의 여러 곳에서 빼어난 경치를 이미 보았고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는 영화의 내용보다 배경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9시30분 서울역에서 출발한다는 소식에 퇴근후 동행하는 집사님들과 함께 교회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다. 결혼 후 밤 외출이 처음이라는(물론 혼자만의) 여집사들의 깔깔거리는 호들갑속에서 서울역까지의 거리는 짧기만 하다.

기다리고 있는 기차는 문학기차여행의 관광기차가 아니고 일반 새마을호 열차이다. 관광열차가 한달간 정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다음번엔 근사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거라니 기대해보자.

 

9시37분에 출발한 열차안에서 작가 김주영선생님의 문학강연이 있었다.

키가 훤칠한 선생은 책에서의 모습보다 훨씬 미남이시며 유머도 풍부하시다. 평소 깐깐하고 까다로울거란 내 예감이 빗나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벤트칸으로 가니 이미 만원이다. 별수없이 자리로 와서 TV로 강연을 듣는다. 강연이 끝나고 선생의 대표작인 '홍어'가 TV문학관으로 방영된다.

 

2시02분, 새벽기차는 안동역에 정차했다. 대기중인 다섯대의 관광버스에 나누어 몸을 실어 청송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가는 동안 짙은 멀미에 시달리고 권순애집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속엣 것을 조금 뱉고서야 얼굴이 풀어진다.  물론 내 속에서도 들어선 것들이 튀어나오고 싶어 꿈틀대고...

 

주왕산호텔의 온천에 몸을 풀었다. 교보문고 문학기차여행을 위해서 다른 손님들을 들이지 않고 오롯이 우리만 반겨주니 큰 대접을 받는것만 같다. 비단결같은 온천욕을 즐기며 집사님들의 벗은 몸을 감상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솔향기의 기운이 미친다는 솔기온천, 몸에서 솔향기가 나는듯 하다. 

 

새벽의 주산지는 물안개가 일품인 탓으로 무박으로 택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주산지로 향했다. 1000년이 넘은 왕버들나무가 연못의 곳곳에서 늙은 자태를 드러내고 사람들은 왕버드나무를 배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바쁘다.

예쁜 세명의 집사님들과 나도 얼짱의 각도를 잡아가며 최대한 날씬한 모습을 연구하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아쉽게도 물안개는 보이지 않고 새벽의 이슬만이 함초롬하게 내려앉았다.

영화 촬영지의 암자는 주민들의 요구로 이미 철거했으나, 철거한 뒤 주민들이 많은 후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영화에 나왔던 암자가 다시 지어질 거라는 소식이다.

 

처음 일정에 잡히지 않았던 주왕산은 김주영선생님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서 급히 수정된 코스이다.  28년전 주왕산에 갔었던 기억이 새콤달콤한 소스같이 여겨진다. 아직도 가물거리는 길들을 따라 주왕산을 오르는 기분이 얼마나 새로운지.

여전히 깨끗하고 맑은 물, 물속에서 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환히 들어오고 물뱀까지 헤엄친다. 병풍같은 바위탓에 주왕산의 처음 이름이 석벽산이라고 한다. 병풍같은 바위가 둘러쳐졌고 병풍같은 바위위에 이끼가 한송이 꽃이 된듯이 곳곳에 커다랗게 피어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제1폭포까지 오르는 길은 오솔길이다. 걸으면서 노래하기에도 그만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에도 그만이다. 네명의 여자들이 가을에 취하고 주왕산에 취하고 들꽃에 취하고 여행하는 자유로움에 취하여 그저 즐겁기만 하다.

 

깨끗하고 정갈한 주왕산, 가을이면 더욱 이쁠거란 생각에 다시금 와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주왕산을 내려왔다. 예정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옹기체험장까지 들렀다. 작가이신 김주영선생님이 잘 아시는 분인가보다. 특유의 경상도 말씨로 오랫동안 툭툭 몸짓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왠지모를 반가움에 가슴이 따뜻하다.

 

옹기체험장을 나서 송소고택으로 향했다. 송소고택은 99칸의 심처대(沈處大)의 富가 어느만치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청송군수가 직접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고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청송 沈씨들의 자존감을 느낄수 있는듯 하다.

 

송소고택을 나와 안동으로 향했다. 월영교를 관람하기 위해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월영교는 나무로 만들어진 긴 다리이며 부분부분에 날개를 치듯이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하루에 몇차례씩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세차게  뿜어지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운이 좋다라고 몇번이나 강조를 하는걸 보니 때를  잘 맞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걸어보며 얼마나 견고할까를 염려도 해보고 얼마나 오랜세월을 버틸까..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며 깔깔거린다.

 

월영교앞에 죽 늘어선 식당가, 안동에서 유명한 헛제삿밥을 주문하고 간고등어에다 감자전까지 이경자집사가 담당한다. 헛제삿밥은 어릴적 먹었던, 아니 지금도 경상도에서 제사지낸후에 먹는 음식 그대로이다. 고추가루가 들지않은 각색의 나물과 바다고기, 돔배기, 몇가지의 煎이 오래전의 그때처럼 각자의 앞으로 음복이듯이 담겨 나왔다. 물론 특별한 맛은 없다. 경상도 특유의 밋밋한 맛일 뿐이다.

 

점심을 먹고 이육사문학관으로 향했다.

유명한 詩 '청포도'와 '광야'를 기억하며 문학관에 들어서니 분위가 숙연해진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며 자명으로는 李活이라는 이름을 썼으나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17번의 옥살이를 하셨다고 하니...  부친과 외조부께서도 독립운동가이셨으며 퇴계 이황의 13세孫이기도 하시다.  놀라운 일은 이육사란 이름은 죄수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부인은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에서 출생하신 안일양이란 분이시다. 친정에서 1시간거리이다.  안타깝게도 마흔에 별세를 했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도산서원은 생략하고 퇴계 이황선생의 종택에 들리기로 했다. 오래된 고택이라서 많이 허물어져 있지만 아직도 후손들이 기거하고 있는 것은 방치해 둘 경우 집이 폐허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안 곳곳을 돌아보며 퇴계 이황선생을 다시금 떠올리기도 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안동역으로 출발, 안동역에서 4시37분에 기차가 서울로 출발한다.

따뜻한 저녁도시락이 각자에게 주어지고 여자들이 가장 행복한 식사는 누군가가 차려놓은 밥상이라며 기분좋게 식사를 한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문학의 밤이 시작되었다. 무명가수의 노래가 있고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박덕교수의 진행으로 문학퀴즈가 진행되었다. 여전히 상품에 눈이 먼 나는 번쩍 든 손으로 책 3권을 휘어잡았다. 문학퀴즈가 끝나고 하이라이트인 사행시와 백일장 발표의 시간.. 긴장감이 감돈다.

 

사행시와 백일장을 묶어서 시상을 한단다. 가작 10편을 불렀지만 내 이름도 없고 시인인 권순애집사의 이름도 없다. 3등을 발표하면서 이진옥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 분은 상품이 없습니다. 조금전에 책을 타기도 했고, 백일장과 4행시 둘다 당선이라서..'라고.

기분이 짱이다. 사행시가 3등에 당선되고.. 2등 2명을 발표하는데 내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잠시 뜸을 들이던 사회자가 1등을 발표한다. '이진옥님..나오세요.  이분의 글을 읽으면 왜 1등일수 밖에 없는지 아실겁니다'라며..

 

'문학기차'란 제목의 글을 점심시간에 더듬더듬 써내려갔는데 운좋게 일등이다. 김주영선생님으로부터 시상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책과 도서상품권 30,000을 받았다.

백일장 1등 해본지가 10년은 넘은것 같은데.. 기분이 좋다. 날아갈 것만 같다.

여섯권의 책은 함께간 집사님들께 골고루 나누어주고 내가 읽지않은 책 1권만 가진다.

 

가을과 함께 떠난 가을여행, 좋은 이들과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한 문학여행이라 더욱 행복하고 백일장에서 1등을 한탓에 더욱 기쁘기만 한 여행,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번 가을은 여러모로 풍요롭고 행복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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