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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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디디아 2005. 3. 12. 05:39
'늪 - 포산일기6' - 중에서

이하석(1948~ )


생각의 수면도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둡다
밑바닥에는 우렁이 기어간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어구를 챙기며 어부가 물속을
들여다보면
수면을 거대한 잎들로 덮고도 사려깊게 내다보는
늪의 푸른 눈

제 안의 꽃을 내헤쳐 보이고 싶은 늪은
어부 앞에서 망설인다
가시연마저 온몸의 가시로
제 몸을 찢고
수줍음을 불빛처럼 켜낸다
제 안에 있는 힘이 끊임없이
밑바닥을 차고 올라와서 펴는 생의
說明이 왜 저러할까

- 후 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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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두번, 커다란 인심을 쓰듯이
낚시가방을 메고 흔들리는 즐거움으로
휘이휘이 걸어가는 남편의 뒤를 졸졸 따라 가
줄 때가 있다.
휘파람 대신 흥얼거리는 노래를 멈추고 낚시가방을
내리고 좁은 의자를 펼치는 곳은 언제나 침울한 늪이다.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물이 아니라 고여서 썩는 듯한 물에서
낚싯대를 던지고도 모자라 떡밥을 주무리고,
것도 부족해 지렁이를 꿰는 남편의 모습은
낚싯터를 둘러싼 늪의 그것처럼 축축하고 눅눅하다.
늪의 어느구석에 펄떡이는 붕어 대신
입 큰 악어가 버티고 있을 것 같고,
커다란 배암이 꿈틀거릴 것 같아서 무섭다.
그래서 낚싯길에 따라나서지 않는 나의
늪을 남편은 모른다.

내 속의 늪은 어떤 모양일까.
낚싯터를 둘러싼 늪보다 훨씬 침울하고
훨씬 어둡고 깊은 늪임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늪을 느끼지 않은채,
장맛비로 모습을 드러내는 늪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진옥이의 한마디!!)
출처 : 그대곁에 오미희(吳美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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