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묻고 - 중에서
이 상 희(1960~ )
세상을 빠져나가려는 중이야
쉬잇 내 말을 들어봐
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다.시.는.돌.아.오.지.않.는.다
다시 돌아와도 찾을 수 없도록
도와줘 데이지, 내 얼굴을 먹어줘
내 의자와 찻잔을, 이름과 구두를 삼키고 동그란 꽃봉오리를
단단히 오므려버려
숱한 풀꽃더미 사이로 숨어버려
- 중 략 -
데이지, 그런데 난 돌아오고 싶을 거야
야수와 포옹할 미녀를 기다리며
끝없이 기나긴 불안의 끄나풀이 되고 말거야
도와줘 데이지, 돌아올 수 없도록
내 생의 사진들을 먹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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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화분,
황토흙으로 빚은 작은 화분은
도자기를 굽는 노인의 실패작일까,
숫자에 맞추며 습관처럼 구워내는 일인 것일까?
황톳색의 화분위로 검은 거름 한줌이 뿌려지고
거름위로 한송이 데이지가 보랏빛을 띠고
분홍빛을 띠고 선명한 핏빛을 띤채
정오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미소를 머금는 풍경,
데이지 꽃속에 얼굴을 밀고
누구를 붙잡기 위해 속살거리는 걸까?
떠나려는 자를 잡으려는 남는 자의 슬픔이
어쩐지 데이지 꽃을 닮은것 같다.
너는 떠나려 하고
나는 떠나는 당신을 잡으려하고..
무망함을 이기려 데이지 화분에 얼굴을 묻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떠나는 그가 알기나 할까?
지구가 뒹구는 동안에,
하나님이 천지를 움직이는 동안에
어느 곳에선가는 이별을 위한 눈물이 끊이질 않을 것이고
데이지 꽃 화분에 얼굴을 묻어야 하는
가슴 미어지는 사람또한 숨을 쉬리라.
아~~
지금도 누군가는 데이지 꽃을 피우기 위해 씨앗을 뿌리고
누군가는 피어나는 데이지 꽃 화분에 물을 뿌리리라.
살아있구나.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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