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여자- 청산옥에서 2
윤 제 림(1959~ )
상에 오른 비름나물이 아무래도 심상찮았습니다.
맛이 간 것입니다. 엊그제 도착한 염천(炎天)이란 놈이
내 먹을 음식까지 휘저어 놓은 것입니다.
쥔 여자를 불러 따졌습니다. 조금 전 손님까지 말없이
먹고 갔는데 무슨 소리냐며 되레 역정입니다.
가는 맛을 어떻게 붙잡느냐며, 싫거든 두 마장 밖
곰보네로 가랍니다. 한 술 더 떠서, 맛이란건
뜨내기 손님 같아서 왔나 싶으면 가버린다는 훈시에,
당신같은 느림보는 만나기 힘들 거라는 악담!
처음엔 퍽 상큼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여자도 맛이 간 모양입니다.
염천의 방에서 나오더란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말도 영 틀린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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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의 소나기가 그친 오후,
약속없이 무참하게 비가 내린 어느 여름날의 오후,
'비름'이라 이름붙여진 풀 포기위에
아직도 영롱한 빗방울이 여름바람속으로 스미지 못해
반짝거릴 때,
책보따리를 마루에 던진 채
아버지가 꼭꼭 여며주신 다래끼를 끼고
뽕나무 밭으로 달리던 기억.. 새롭다.
보석같이 반짝이며 말간 낯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비름나물을 톡톡 뜯어내는 재미..
살짝 데친 비름나물을 조물조물 무쳐내던
엄마의 굳은 손과 옥양목의 흰 앞치마..
나물을 좋아하신 아버진 고추장 한숟가락을
듬뿍 얹은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드셨는데..
뽕나무 밭 사이로 나물을 뜯어내는
어린 내 종아리위로 흙이 튀기고
낡은 치마위로 빗물이 닿아 흥건했어도,
나물을 좋아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거침없이 달려가던 내 소녀의 효심이여...
비름나물에 고추장을 섞어 굵은 땀방울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쪽진 머리에 비녀가 꽂혔던 자리에
하얀 머릿결을 감추느라 틈틈이 염색약을 바르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그리움일 뿐인 것을..
맛도 마음도
뜨내기 손님 같아라!!
(진옥이의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