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스크랩] 살구꽃

여디디아 2005. 3. 5. 00:24
살 구 꽃
- 문 신 (1973~ )

해마다 사월이면 쌀 떨어진 집부터 살구꽃이 피었다
살구꽃은 간지럽게 한 송이씩 피는 것이 아니라 튀밥처럼,
겨우내 살구나무 몸통을 오르내리며 뜨겁게 제 몸을 달군 것들이
동시에 펑, 하고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살구꽃은 검은 눈망울을 단 아이들이 맨발로
흙밭을 뒹구는 한낮에 피는 것이 아니었다
살구꽃은 낮은 지붕의 처마 밑으로 어둠이 고이고,
그 어둠이 꾸벅꾸벅 조는 한밤중에 손님처럼 가만히 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새벽이 오면 오갈 데 없는
별들의 따뜻한 거처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살구꽃이 피는 아침이면 마을 여기저기서
씰독 긁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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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일이다.
살구꽃이 쌀독에 쌀이 떨어진 집부터 피어나다니...
조금이라도 빨리 열매가 맺히고, 맺힌 열매가 노란색으로 바뀌어
가난한 그들의 뱃속을 채우리라.
처마밑으로 고인 어둠이 조는 시간에 꽃이 피어나기에
아침 출근길이면 활짝 핀 살구꽃들이 나를 놀라게 했었나 보다.
어릴적, 작은 오빠가 장독대에 살구나무를 심었었는데,
집을 새로 지을때 가장 안타까운 것이 오빠가 심어놓은 살구나무였음은
나만의 서운함이 아니었을텐데..
지금 어느 땅속에서 꽃을 틔울는지...
- 진옥이의 아쉬운 한마디 -
출처 : 그대곁에 오미희(吳美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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