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주현군!!
11월, 어쩐지 하얀 서리와 그 서리를 맞으며 처연히 피어있는 국화가 그리운 날이다. 어느새 11월인가 싶을만치 세월은 자기의 때를 알고 있다, 그것도 분명한 모습으로 말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소국이, 들국화가 넘치도록 피어있고, 우리집 들어가는 큰길엔 은행나무가 어찌나 부요한 황금색을 칠하고 있는지.
난 그 길을 참 좋아하거든. 너 알고 있을까?
비가 내리는 여름이면 슬리퍼를 끌면서 우산을 편채로 길을 걷곤 했거든, 혼자서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그러다 칡냉면 집이나 육교앞에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는 커피를 아끼듯이 먹곤 했단다. 그때 내가 부른 노래는 거의가 복음송이었고 너를 키울 때 불렀던 섬집아기와 우리가 많이 불렀던 ‘나는 주의 화원에..’도 빠트리지 않고 불렀단다.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우산을 가린채 불렀기 때문에 자동차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알아볼 수 없어서 편안했고 말이야.
그렇게 비가 많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나무의 변화를 살피고 오롯하게 피어있는 들국화를 보느라 걸었거든. 가을이 짙어져 어느새 겨울이 묻은 아침을 만나는 날이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은행잎을 밟는 매력을 떨치지 못해서 또 걸었단다.
4계절 어느 때든지 상쾌하고 기분이 좋은 길..무엇보다 깨끗하고 밝아서 더 좋은 그길.. 오늘 아침에도 노란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길 위에 나른하게 누운 은행이파리를 보며 출근을 했단다. 그렇게 가을이다. 깊은 가을이다.
주현아!!
너는 이미 가을을 건너뛴 겨울의 어느 한곳에 머물겠지? 아침마다 시큰거리는 통증을 몰고오는 다리로 날씨를 가늠하고, 지루하게 붙박힌 벽시계를 보며 이 겨울이 속히 지나가기를 바래고, 더디게 지나는 달력의 숫자들을 보며 새봄을 기다릴테지?
그 모든 기다림속에서 나는 너를 마음 아프게 그리워하고, 순간순간 보고픔에 스스로 놀래기도 한단다.
유난히 아픈 가을을 앓고 겨울을 시리게 맞이하는 너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구나. 그런 너를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리라.
사랑하는 주현아!!
내의를 샀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내의를 입지 않겠다고 뻗대던 너를 생각하며 웃었다. 더 도톰한걸 사고 싶었는데 아직은 두꺼운 것이 없더라. 내의에다 엄마의 마음을 묻혔으니 더 따뜻할 거야.^^*
과자는 어린 날의 네가 먹었던 것으로 샀다. 하긴 그때도 내가 골라 주었을테고 철이 들면서 이미 내 손에 의해 네 입이 길들여졌을거야. 홈런볼은 부피가 커서 뺐다.
네가 가장 처음 먹었던 과자 홈런 볼...ㅎㅎ
네가 처음으로 하는 것들은 왜 그리 기억하고 팠던지.
처음 먹은 이유식.. 밤 암죽, 처음 먹은 과자 홈런 볼.. 처음 한 말 엄마..
처음 익힌 글씨 우루사..(tv덕분에..)
처음으로 본 프로그램 뽀뽀뽀.. 하나 둘 셋..
엄마는 그런가보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같이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교엘 가면 같이 중학생..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보니 지금은 나도 군인아줌마?ㅋㅋ
아무튼 너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주현아!!
날씨가 추워지는데 옷 두껍게 입어라.
같이 보내는 조끼는 우진이가 군대서 입던 것이라고 하는구나. 깨끗하길래 같이 넣는다.
올 겨울은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구에는 유난히 눈이 많다는데..
핸드크림이 있길래 넣었다. 듬뿍듬뿍 발라서 엄마 마음 아프게 하지마라.
두꺼비 같은 네 손이 터서 갈라지면 엄마는 마음이 갈라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테지?
참, 다리가 빨리 나아야 할텐데.. 걱정이구나.
늘 조심하고...
신앙 잘 지키기 바랜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청년이길 바랜다.
사랑하는 주현아!!
우리 서로를 위해서 늘 기도하자구나.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족으로 만나게 해주심이 감사한 이유 아니니?
늘 건강하도록 노력하며 지금 우리의 환경에서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자.
세현일 위해서도 기도 많이 하고 있지?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하길 바래고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 의로운 길로 가길 바랜다.
엄마 보고싶다고 울지마라.ㅋ
2005년 11월 첫날에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