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은 사 슴
지은이 : 한 강
출판사 : 문학동네
한 여자가 있었다.
서른이 넘도록 일에 매달리며 결혼엔 관심이 없다.
누구든 자신의 일에 방해되는 사람을 못견뎌하며
혼자만의 삶에 특별한 불만이나 불평도 없이
프로다운 근성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살아가는...
그 여자에게 어느날 새로운 여자가 눈에 띈다.
백치처럼 표정없는 얼굴에 아이처럼 해맑은 여자,
스물을 갓 넘긴 여자는 같은 건물을 쓰고있는
제약회사의 여직원이다.
일에 지칠대로 지치고 삶에 힘겨워 찌들어가는..
'임 의 선'
강원도 탄광촌에서 자란 의선은 어느순간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조금씩 찾아간다.
기억을 찾아갈수록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의선,
대낮의 거리에 옷을 훨훨 벗은채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종이 연을 팔고있는 할아버지로부터 연을 가지고 4시간이나
달음박질하여 삼양동의 판자촌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런 의선을 사랑하는 남자,
역시 불우했던 어린 날을 마음에 품은채로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맴을 도는 남자,
잡지사 여기자인 인영과 명윤이란 남자가 어느 날
낯설게 찾아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의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이야기이다.
그때는 정말 모두가 그랬을까.
가난하고 어려워 서로를 보듬기에도 바빠 지쳐가고 있었을까.
그 지침이 지루하여 서로를 보듬고 싶어 안달을 하고
보듬을 시간마져 허락질 않아 그리워만 했을까.
엄마와 언니와 함께 살아가며 기다림에 익숙해진 인영,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가난이란 이름이 주는 궁핍을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던 명윤,
어지럼증으로 인해, 늘 먼 산과 하늘에 눈길을 주고
그 눈길로 인하여 어디론가 훨훨 떠날듯 한 아내를 위해
손수 약초를 캐다 약을 끓이던 의선의 아버지,
남편의 두려움을 비웃듯이 사라진 의선의 엄마,
남겨진 의선과 오빠,
그들이 기다리던 부모는 의선으로 하여금
어린 날의기억을 잊어버리게 하고, 살아있는 시간조차
잃어버리게 한다.
의선을 찾기위해 연골로 길을 떠나는 인영과 명윤의
복잡함과 간절함이 안타깝게 다가든다.
검은 사슴은
탄광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캘 때
뿔이 길다란 사슴이 나타난다.
사슴은 바깥의 세상이 그리워 광부들에게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한다.
광부들은 사슴이 두려워 뿔을 주면 밖으로 나가게 해준다고
하여 사슴의 뿔을 자르고 두 다리를 자른다.
아무힘도 남지 않은 사슴은 탄광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아침안개 같은 의선이와
사라지는 안개를 잡으려는 명윤의 몸부림,
그들을 지켜보며 이미 그들에게 휩싸인 인영을 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구나..싶어진다.
작가 한 강,
아버지 한승원을 떠나 그녀의 섬세하고 깊은 맛을 우려내는
글이 참 좋다.
오랫만에 좋은 작가를 만나서 반갑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