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아내의 맨발

여디디아 2005. 9. 13. 12:51

 

 

 

 

 

아내의 맨발 3 - 갑골문

 

 

송 수 권(1940~         )

 

 

 

뜨거운 모래밭 구덩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은 후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꺼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간다

 

얼굴엔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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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수줍은듯 하면서 옹골차고

겸손한듯 싶으면서

자기앞가림 야무지게 하고

없는듯 하면서 빈 자리를 메우는

손이 열개이고 발이 열개이며

많은 손과 발 중에도

내 몫의 손과 발은 자취조차 불분명하고

아침을 깨우고

저녁을 맞이하는 시간위에서

'오로지 나의 것'들에 대한

짙은 애착이 사랑인지, 소유욕인지..

 

한때

천사처럼 고운 마음씨를 지녔던 여자,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했던 여자,

불쌍한 이들을 보며 긍휼을 느끼던 여자,

'섬김'과 '나눔'이

지극한 일상이었던 여자..

고운 미소로 답하며

깊은 눈으로 바라보던 여자..

 

바로, 당신의 아내입니다.

 

명절증후군으로 하여 지금쯤

어깨가 결리고 손발이 저리고

명치끝 어딘가에 무언가 탁~~

얹힌채로

자꾸만 잃어가는 밥맛의 이유를 캐묻는 아내,

 

이번 추석엔 당신의 아내에게

명절의 참 맛을 느끼게 하십시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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