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2003년4월30일

여디디아 2005. 2. 22. 11:30

어느 날...

청아하고 청명한 날, 작은 유리창을 열면 찔레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기 위하여 연초록의 이파리를 봄바람에 위무받으며 나비들의 희롱조차도 무심한채로 받아 넘기고, 길게 어우러진 가지 끝에 달라붙은 가시가 살을 더함으로  튼실한 찔레를 맺히게 하리라.

찔레나무 위로 노란빛에 가까운 밤나무 이파리가 싹을 틔웠고, 싹이 튼  끝동마다 밤꽃을 피우기 위해서 열매같은 꽃망울이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맺혀져 있다. 연록의 이파리들 사이로 지나는 봄바람이 여름을 몰고 햇살은 또한 여름에 가까움으로 열기를 더함으로  하늘을 마주볼 수 조차 없도록 만드는 오늘, 더 이상 좋을 날씨가 없을 듯 싶을만치 화사한 날은 어쩐지 내게는 미지근한 날처럼 미직하게 지나고 마는 사실에 놀란다.

변함없는 일상의 모습으로, 나른하기도 하고, 구역질나게 배부르기도 하고, 왁자한 소리들에 인상쓰이는... 그런 미지근한 날의 어느 하루일 뿐임이 놀랍기만 하다. 아름다운 날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느끼며 선듯한 두려움에 부르르 몸을 떨어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날은 대체 어느 날의 어떤 모양일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삶을 적막함속에 지내는.. 그런 삶을 원한 것일까?  여전히 친구들과 마주앉아 속절없는 이야기들에 시간의 흐름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두서없이 보내 버리는 그런 삶을 원하는 것일까?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하나님앞에서 바르지 못한 나의 이중적인 생활과 가족간의 삶일지라도 물질이 궁핍하면 스스로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나만을 당신이 전부라며  달콤한 말들로 속삭이는 사람의 또다른 면을 보아버린, 은밀한 것을 보아버린 아이가 더 이상의 은밀함을 느끼지 못하는 허무같은 비린내일까?

그래, 그런 것들이, 나의 마음을 붙잡았고, 나의 생활을 지배했고, 나의 삶을 차지했음을 알고 있다. 거기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또한 맞는 말임을 애써 숨기지 말자.

아직은 그들에게서 빠져 나올수 없는 자신을 알고, 또한 빠져 나올수조차 없는 나의 빈 몸과 텅 빈 마음을 알고 있다. 나에게 물질을 요구하고 마음을 요구하는 그들을 외면치 못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면이 또한 두려움으로 혼자 낑낑거리는 봄날의 마흔 다섯의 힘없는 여인네의 모습은 그래서 미지근하다는 것을....

            


       2003년  4월 30일 가는 봄날이, 가는 4월이 또한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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