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1983년 설날을 지내고 가장 한가로운 겨울에 엄마는 세 자매가 자취하는 서울로 딸들의 겨우살이를 지키기 위하여 오시었다. 칠남매의 자식들 중에서 셋만 남은 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늘 마음아파하는 엄마는 겨울이면 한두달간 딸들을 위해서 서울에서 지내곤 하시었다. 년초가 되면 7남매의 한해 운세를 보면서 무사안일을 바램하던 엄마는 여전히 한해의 운세를 빼곡하게 가슴에 채워오셨다. 그리곤 ‘야야 니는 올해 시집간단다. 그런 운세더라. 무슨 일이 있어도 시집간단다’라고 하셨다. 그때의 섬찟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특별히 사귀는 사람도 없었고 그저 서로가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던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으니... 더구나 그 사람은 형이 버티고 있었고 군 전역후 다시 시작한 학교는 2학년일 뿐이었으니...
완강하게 거절하던 나는 여름성경학교를 마친날, 동생의 소개로 키가 커다랗고 길다란 우산을 든 남자를 만나 사랑인지 뭔지도 모른체, 적극적인 공세에 의하여 결혼을 하고, 당연히 신혼여행은 제주도려니 여겼던 마음에 시어머닌 일년전 같은 날에 결혼한 시누이가 제주도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클을 걸었고 그저 착하기만 했던(?) 난 설악산과 경주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마무리했었다. 제주도는 늘 나의 바램이었고 해내어야 할 숙제처럼, 이루지 못한 꿈처럼 가슴에 자리하고 아이들이 자랄수록 꿈은 현실에서 멀어져가고 멀어져가는 꿈만치 마음은 공허롭기만 했었다.그런 내게 남편은 결혼 20주년에는 꼭가자라는 말로 위로했었다.
신혼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고 나의 청년의 시절은 이젠 아이들이 물려받아 듬성한 모습으로 내게 기쁨과 고통을 안겨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올해가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가 되었다.
썩 유쾌하지 않은 여행계획부터 떠나는 날 아침의 추석날, 여전히 마음엔 안개같은 미진함이 우리를 두르고 애써 내색치 않으려 무심하게 시간을 보내며 꿈처럼 여겼던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첫째날,
추석, 전날 준비한 부침과 포도와 과자를 챙겨서 이른 아침에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정확한 시간에 나타난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이동을 하고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의 설레임만치 촌스러운 모습들을 숨기기 위하여 남은 시간 공항을 둘러보는 모습으로 공항을 익히는 남편을 커피를 마시며 티브이를 보면서 기다린다. 텔레비젼에서 보던 모습보다 훨씬 작고 보잘 것 없는(?) 공항의 모습에 위로를 느끼며 신기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하는 동안에 잠시 멍해지는 몸과 마음, 까맣게 멀어지는 땅에서의 생활을 아득하게 바라보며 비행기가 날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내가 날고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아니 그런 기분이다.
제주공항에는 못생긴 가이드가 사무적이면서도 주부의 모습을 실은채 일행을 기다리고 낯선 나라의 어디쯤인 듯 여겨가며 전혀 낯선 이들과의 관광을 시작했다. 주절주절 내리는 비 때문에 한라산을 포기하고 민속박물관을 구경했다. 어느 박물관과 마찬가지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제주도의 특징을 미리미리 익혀두었다. 비를 핑계로 지정된 호텔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도의 호텔이란 곳이 우리동네의 모텔보다 뒤쳐진 수준이어서 실망한다. 칫솔과 샴푸까지 개인이 구매해야 한다는 안내에 어쩐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이다. 까짓 1000원 때문에....
여장을 푼 뒤 호텔앞에 길게 펼쳐진 바닷가를 걸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책로의 깨끗하고 조용한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자꾸만 자꾸만 마음에 새겨두었다. 낚싯군의 바늘에 황금돔이 걸려있음을 보고 충만한 기쁨을 내가 느낀다. 바다를 낀 산책길을 돌아오면서 오분작 찌개를 먹었다. 이름이 이상할 뿐, 맛은 흔한 해물탕이다. 오분작에 곁들여 청하 두잔을 마셨다.
제주도의 깊고 푸른 밤이 청하의 짜릿한 맛과 함께, 호텔앞에서 철썩이는 파도와 함께 처음 비행기를 탄 내 설레임과 함께 깊어갔다.
둘째날,
언제 어디서건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우리부부의 습관은 제주도에서도 어쩔수가 없다. 등교할 세현이가 없음에도 같은 시각에 잠에서 깨어 태풍이 시작된 바닷가를 확인하며 어제의 산책길에서 자판기 커피를 거푸거푸 마셨다. 태풍 매미가 제주도를 강타한다는 소식처럼 아침부터 비바람이 예사롭지가 않다. 호텔에서의 아침식사는 그저 평범할 뿐이다.
비가 오는중에도 관광은 시작되고 처음 코스로 천지연 폭포를 찾았다. 버스안에서 가이드가 나누어준 제주도의 송편을 맛있게 먹었다. 가이드처럼 못생긴 송편이 제주도 특유의 송편이란다. 초록의 완두알이 박힌 송편은 쫄깃거리며 맛이 좋다. 천지연폭포를 돌아나오는데 제주도의 여성연합회에서 봉사를 하는지 제주 송편과 좁쌀 막걸리를 대접한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막걸리 한모금을 마시고 송편 몇 개를 먹었다. 한쪽에선 송편을 빚고 옆에선 찌고, 또 앞에선 그릇에 담아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들이 정말 아름답고 고맙다. 이들의 풋풋한 인정을 잊지 않으리라..여겨본다. 섬기는 손들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또한 바래본다.
비가 내리는 천지연 폭포의 아름다움과 쉼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가득하게 흘러내리는 물 앞에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하심에 잠시 마음을 놓는다.
아무래도 비가 심상치 않다. 자연을 관광하기엔 이미 틀린 듯 싶다. 그렇지만 호텔에서 묶여 있다는건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알아챈 가이드는 실내로 우리를 안내한다.
퍼시픽랜드, 앙중맞은 원숭이들의 재롱을 보면서 문득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엉뚱한 욕심이 생긴다. 이어진 돌고래쇼와 바다사자들의 쇼 또한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비가 오는 관계로 모든 관광객이 몰려든 탓에 자리도 없고 불편하기만 하다. 한 시간동안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안고 있어도 될 아이를 널찍하게 앉혀놓은 넉살좋은 부모들도 많다. 그런 부모들곁에서 행여 외국인이 눈짓을 보낼까봐 내가 전전긍긍이다.
돌고래의 장난과 바다사자의 천진함에 불편함도 잊은채 시간을 보내고 버섯재배단지로 안내되었다. 농민들의 서러움을 울분과 함께 토해내는 이장님, 귤나무는 자식들을 대학까지 가르친다는 이유로 대학나무로 불렸었는데 지금은 고생나무이며 그나마도 뽑아버리는 형국이라 2005년이 되면 귤나무는 없을거라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농민들의 서러움을 어찌나 토해내는지 모든 관광객들이 울분을 느끼며 정부의 무심한 대책에 대하여 분노한다.
울분과 분노를 폭발케함으로 그들의 목적이 달성된 것일까, 상황버섯을 판매하는 그들의 설명에 고가의 상품도 잊은채로 너도나도 구매한다. 오직 나의 건강과 제주농민들의 삶을 위하여... 어느새 남편의 손에도 상황버섯 두통이 들려있다. 폐경기의 기미를 보이는 아내를 위하여 냉정한 그의 마음이 움직였음이 놀랍다. 돈 보단 마누라가 먼저(?)인가??? 아님 군중의 심리가 작용했을까?
중문단지를 벗어나는 길에 어느새 길은 도랑을 이루고 작은 차들은 꼼짝도 하지 않은채 레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쏟아지는 비와 몰아치는 바람, 태풍의 중심에 서있다. 길에서 두시간을 꼼짝없이 보내고 어쩔수 없이 호텔로 돌아왔다. 조금전 우리가 갇혔던 길위에서의 모습은 이미 텔레비젼에서 보여지고 호텔은 앞문을 걸어닫은채 후문을 이용하고, 파도는 호텔앞까지 몰아치고 있다. 폭풍속에 갇힌 제주도에서의 이튿날은 사나운 파도와 성난 바람과 살기위해 바둥거리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과 함께, 일찍부터 잠과 함께 찾아든다.
셋째날,
연약한 우리엄마 태풍에 날려갔나 걱정하는 세현이의 걱정 덕분에 맑은 아침을 만났다. 비 때문에 찍지 못한 사진을 아침부터 찍느라 바쁘다. 남해안을 강타한 태풍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얼마나 힘이없고 연약한 인간인가 말이다. 인간의 나약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니, 힘들게 살아가는 이 세상이 참으로 허망하다.
어제 하지못한 관광을 보충하기 위해 일찍 시작한 관광, 성읍마을의 異國같은 느낌과 평화로운 아늑함과 낯설고 낯설어 내가 있는 이곳이 어딘지 아득할만치 생경스러운 느낌을 오래도록 가지고 싶어서 이곳에서 살고싶다는 욕심까지 누려본다. 소설속에서나 나올듯한 생활관과 삶의 모습들, 그럼에도 질서정연하여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천국을 그려본다.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 牛島라 이름하는 곳, 아무리 보아도 소가 누운 형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 눈은 그래서 남들보다 작을까?
넓게 펼쳐진 푸른초장과 절벽아래서 부셔지는 파도들, 무섭게 노려보는 깊은 바닷속들, 평화가 참된 평화가 초장위로 비쳐지는 햇살과 햇살사이로 남실대는 가을바람과 함께 충만하게 차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곳뿐이라는 산호 해수욕장, 모래는 없고 하얗고 자잘한 돌도 아니고 모래도 아닌 것이 꼭 껍질을 벗긴 녹두같으다. 잠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태풍에 의해 밀려온 미역줄기도 만져보고 김장때 사용되는 거머리같은 청강도 만져본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에 앉아서 사진도 찍어본다. 참으로 신기한 바다가 아닌가 말이다!!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며 넓고 끝이없는 바다를 가르는 배 위에서 눈은 사방을 훑어보기에 바쁘다. 곳곳에 갖가지의 형국으로 있는 섬들을 바라보고 깊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배를 타는 재미도 만만치가 않다. 배가 지나는 자리로 거품은 얼마나 자잘한 포말로 부셔지는지, 가루비누를 풀어놓은 모습이다. 하얗게 부셔지는 포말에 내 마음을 凈하게 하기위해 마음을 세탁해볼까... 싶어진다. 할수만 있다면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들른 동복리 해녀촌, 해안도로를 달리며 제주도의 바다를 마음껏, 욕심껏 구경한다. 늦게 도착하는 탓으로 이미 회는 남아있질 않고 문어와 전복죽만이 남았다고 한다. 전복죽 한그릇을 남편과 나누어 먹고 찜찜해하는 남편을 무시하며 문어 한접시에 한라산 소주 한잔을 걸친다. 남은 소주는 옆자리의 아저씨들게 건넸다. 소주 반병에 너무 행복해하는 그들에게 웬걸, 큰 인심이나 쓴 듯이 으쓱해지는 나를보고 내가 놀란다. 여기까지 와서 회 맛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억울한 기분마져 느끼게 한다. 문어 한접시를 비우고 카페인이 부족하다는 내 몸의 소리를 들으며 자판기로 걸어가는데 옆에서 아저씨들이 광어회를 열심히 뜨고 있다.
아저씨에게 부탁하니 회 한접시가 바로 나왔다. 횟집처럼 요란한 들러리가 없이 달랑 회만 한접시 나오는데 만원이란다. 남편과 마주앉아 행운인 듯이, 특권인 듯이, 행복해하며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미안함과 함께 두고온 현숙이 몫으로 오미자 차를 한병 사고, 우리 가족용으로 오미자 차 한 병을 사는 것으로 관광을 마치고 늦은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으로 돌아오니 피난민같은 사람들이 꽉차 있다. 어제의 결항으로 밀리고 밀린 탓이리라.
대기실에서 한시간이나 빠른 비행기로 바꾸어 타며 부풀었던 내 꿈의 풍선들을 재빨리 접으며 현실로 돌아오는 길엔 태풍이 휩쓴 자국들로 고통에 가득찬 이들의 모습들이 화면속에서 끝날줄 모르고 신음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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