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인듯이 내리붓던 비가 그친 토요일, 만물이 세수를 끝낸후 수건이 없어 그저 맨손으로 물기만을 툭툭 털어내린듯이 물기를 머금은 오후,
며칠전 중앙일보에서 봐둔 양평물사랑축제는 바쁜 일상의 내게 틈을 만들어 내느라 잔머리를 굴리게 만들었습니다.
몇일간의 야근으로 이미 몸은 천근의 무게이고 정신은 그보다 더큰 무게로 나를 짓눌렀지만 어딘가에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나는 토요일을 허둥대며 마무리했습니다.
건강보험에서 검진을 받으라는 통보에 아무 대책도 없이 병원에 간 동생은 수면내시경인줄만 알고 무방비의 상태로 위 내시경을 했던터라 이미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음에도 간만의 외출을 포기하지 않은채 달렸습니다.
남은 가족에게 행여 우리의 행보가 들킬세라 분연한 태도로 양평으로 향했습니다. 어리버리한 운전솜씨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은채 용감하게 두 자매는 양평 용문산으로 달려갔고, 남자들이 40분만에 도착할 거리를 1시간20여분만에 기쁨이 충만한 마음으로 도착했습니다.
용문산안에 마련된 야외음악당은 이미 몇번 가본터라 낯설지가 않았고 묵은 은행나무는 여전히 우리를 반갑게 맞이햇습니다.
용문산 공원에는 미리 도착한 연인들이, 가족들이 짝을 이루며 다정한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마주친 이들과는 낯섦에도 낯익은 눈인사와 웃음으로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4시부터 시작한 시낭송회는 중간중간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유명 시인들의 자작시가 낭송되었고 양평의 문인협회 회원들의 시 낭송까지 이어졌습니다. 1시간30분동안 이어진 시 낭송회를 마치고 우리는 즐비한 식당가를 훑었습니다. 선택권을 가진 우쭐함으로 똑같은 음식점을 둘러보다 더덕구이가 보이는 집에 마주앉았습니다.
일회용 가스렌지가 호일에 덮힌채 나오고 빨갛게 무쳐진 더덕이 한접시 나왔습니다. 가스불을 켜는것이 두려운 우리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알바생을 불러 가스불을 켰고, 엄마가 해주시던 더덕구이와 오늘 우리가 즐기는 더덕구이의 맛을 비교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양념이라도 엄마의 솜씨에는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의견을 일치하며 갖가지의 산나물과 더덕구이를 먹어치웠습니다.
식사후에 무료로 나오는 커피를 마다한건, 천원짜리 커피를 마심으로 불우이웃돕기 기금에 동참한다는 우월감이 나를 내세우고 싶었던건 아니었는지..
단돈 천원으로 천만원이나 기부하는 이 태도는 어디서 나온 오만인지...
8시부터 시작한 숲속의 음악회는 가수 한영애가 사회를 맡았고, 소프라노 김원정씨는 빨간 드레스를 걸쳐입은채 흘러내리는 어깨선을 노랫가락처럼 늘어트렸습니다. 산새소리보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찰싹이는 율동까지 드러냄으로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잠깐씩 지휘자와 함께 눈을 맞추고 웃음을 맞추는 모습은 어찌나 유쾌하고 상쾌한 기쁨이던지..
이어진 바리톤 전기홍님의 청산에 살리라와 신고산 타령이 흥을 돋우었고,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와 조율은 우리를 음악속으로 함빡 빠뜨리기에 충분햇습니다. 관중석에서 사진을 찍거나 비디오를 찍지 마라달라는 부탁이 누누히 있었지만 철판을 덮은듯한 어떤 이는 계속하여 비디오를 촬영함으로 급기야 한영애씨의 짜증이 묻어났습니다. 불의를 못참는 저 또한 기어히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나가!!" 깜짝 놀란 동생이 황망한 모습으로 나를 자제시켰지만 이미 내 목소리는 나를 떠났음이...
간신히 한영애씨의 누구없소?를 청해듣는 우리는 이미 부끄럽고 무식한 모습이었음이...
두드락이라는 그룹은 큰북과 작은 북을 현란한 솜씨로 두드려댔고, 가수 하림은 새로나온 노래만 부름으로 분위기를 썰렁거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온 테너 임웅균 교수의 오 솔레미오와 리콜레토중의 여자의 마음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임웅균교수의 목소리는 용문산을 뒤흔들었고 수천명의 관중들을 손아귀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듯한 멋진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 임웅균교수의 앵콜송까지 청해들은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야외음악당을 뒤로한채 아쉬움으로 자리를 털었습니다.
양평군에선 환경을 위해서 예산의 40%를 투자한다는 군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느끼고, 문인협회에서 장학금을 기부함으로 양평의 인재들이 서울에서 생활할때에 기숙사를 장만한다는 문인협회장님의 말씀에 다시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가슴벅찬 음악회와 시 낭송회를 관람한 우리는 피로마져 잊어버린채, 가슴속에서 차곡하게 차오르는 희열을 느끼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창 가득히 성에가 낌으로 어기적거리는 운전을 더욱 더듬거리게 했습니다. 갈길은 먼데, 성에는 갈수록 심해지고, 길은 낯설기만 하고... 에어컨을 켜보아도 앞은 뿌옇고 히터를 켜봐도 창은 뽀얗고, 창문을 열어도 여전히 우리앞에 놓인 길은 안개속같은 희뿌연함 뿐...
기어히 SOS를 청함으로 완벽하게 해결하니 눈앞에 남양주로 향하는 길은 세련되고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앞에서 길게 펼쳐지고 그때부터 우리는 끝없는 수다를 시작했습니다. 물을 아끼자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토요일은 과거의 시간이고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날인 주일의 푸르른 시작에서 작별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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