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여디디아 2005. 4. 18. 10:13

꽃들은 경계를 넘어간다

 

 

노 향 림(1942~          )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세상은 아주 작은 것들로 시작한다고

 

부신 햇빛 아래 소리없이 핀

 

작디 작은 풀꽃들,

 

녹두알만 한 제 생명들을 불꽃처럼 꿰어 달고

 

하늘에 빗금 그으며 당당히 서서 흔들리네요

 

여린 내면이 잇다고 차고 맑은 슬픔이 있다고

 

마음에 환청처럼 들려주어요

 

날이 흐리고 눈비 내리면 졸졸졸

 

그 푸른 심줄 터져 흐르는 소리

 

꽃잎들이 그만 우수수 떨어져요

 

눈물같이 연기같이

 

사람들처럼 땅에 떨어져 누워요

 

꽃 진 자리엔 벌써 시간이 와서

 

애벌레처럼 와글거려요

 

꽃들이 지면 모두 어디로 가나요

 

무슨 경계를 넘어가나요

 

무슨 이름으로 묻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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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일아침,

겨울동안 빙판의 길이 두렵고, 짧은 밤이 아쉬워

저만치 미루어놓았던 북한강과의 시간을

봄날아침 처음으로 만났다.

어제가 지나면 하얀 벚꽃들을 볼 수 없을것 같아서

쏟아지는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새벽을 맞았다.

햇볕이 들고 북한강의 강물에 몸을 푼 벚나무엔 이미

벚꽃이 흔적도 없이 잎새만 찰랑거리고

그늘진 길모퉁이엔 아직도 피지 못한 꽃망울이 맺혔고

커다란 벚나무 세 그루에선 활짝 핀 벚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곱다, 이쁘다를 연발하며

자판기에서 뽑아낸 커피를 마시며

피어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버리는 시간이 훨씬 빠른 벚꽃을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그러게..

떨어진 꽃들은 어디로 갈까.

강물위에 동동 떠내려가는 하얀 꽃잎들,

길위에 구르는 하얀 꽃잎들 위로 무참하게 지나는 자동차의 바퀴,

꽃이 진 자리에 애벌레처럼 밀려드는 시간들,

와글거리는 시간은 잎을 피우며 열매를 맺게하는

하나님의 방법과 섭리하심이 있을텐데..

정말 난분분히 흩어진 꽃잎들은 어디로 갈까?

오늘아침에도 TV에선 벚꽃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환한 모습이 가득한데,

이 봄을 나는 이렇게 보내고 말아야하나보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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