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생일이다.
세월이 휙휙 소리를 내어도 듣지 못했는데, 1년에 하루 뿐인 내 생일은 왜 이렇게 더디게 왔다가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1월부터 생일선물을 접수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면 옛 직장 언니가 생일선물로 설화수 기본 세트를 준비해 놓는다.
일 년 내내 화장품 샘플과 때에 맞는 화장품을 선물해 줌으로 내가 구매할 화장품은 기본 색조 화장품 몇 개다.
나랑 비슷해서 성질이 급한 영숙인 1월에 사무실에서 입어도 좋고 외출용으로도 좋은, 따뜻하고 이쁜 조끼를 선물하더니 생일날이 되니 이미 전해준 선물은 잊어버린 듯 꽃바구니를 떡~하니 보내와서 나를 꽃처럼 웃게 한다.
평소 딸이 없어 한정된 패션을 알고 있는 선집사는 얼마 전 구입한 점퍼에 맞는 머플러를 선물해 주어 행복하게 한다.
설이 지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고 코로나로 인해 하루 확진자가 10만이 넘어가는데 다시 아이들을 집합하게 할 수는 없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봉투보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그것을 받고 싶어 톡을 했다.
"주현 - 240mm의 등산화,
세현 - 제주도 2박 3일 숙박권"을 부탁한다고...
비싸지 않고 적당한 것으로 하라는 말은 이미 인사치레임을 알고 있다.
3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아들들의 손을 알고 있기에, 과하다 싶어도 두 눈 질끈 감았다.
생일날이 되니 나이키 등산화와 함께, 맞지 않으면 바꾸어줄 테니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주현이가,
생일 다음날 새로 신은 등산화 덕분에 천마산 정상을 올랐다고 하니 불편하지 않느냐고 걱정을 보낸다.
'아무렴, 이 맛이지. 신발이 맞는지 안 맞는지, 발이 아픈지 물어봐 주는 것'
아무래도 내가 바란 것이 이것이었나 보다.
생일날 아침부터 카톡이 불이 난다.
여기저기서 커피와 케이크가 날아와 핸드폰 위에 걸터앉는가 하면 꽃 선물이 택배를 통해서 전해지고, 이미 읽은 책이 포함된 책들이 도착한다.
출근길 새시 아래에 놓인 내가 좋아하는 호랑이 떡은 명애 언니 권사가 이른 아침에 떡집에 들러서 가져다 둔 것이고
민경이가 케잌과 석류음료를 선물로 내놓음으로 생일날임을 보장한다.
숙박권을 주문했던 세현인 허전했는지, 집 앞에 있는 뚜레쥬르에서 케이크을 찾아서 아빠와 함께 촛불을 켜라고 한다.
그 마음이 케잌 위에 켜진 촛불의 온기처럼 내게 전해진다.
생일 사흘 전, 동생이 언니 생일 축하한다며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길래
"소 잡았어?" 했더니 "채소 잡았다"라고 한다.
"언니 생일이니 형부가 좋아하시는 메뉴로 했어" 란다.
참내.. 우리 자매가 이렇다.
동생에게 마음을 전할 때는 제부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에게 마음을 표시할 때는 형부가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한다.
이것이 정말 참사랑이 아닙니까? ㅋㅋㅋ
주일예배 후, 교회 절친인 명애, 정자 언니 권사들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먹고 싶은 거 고르란다.
금남리 햇빛촌에서 멋지게 차려진 한정식 한상을 받아도 차고 넘치는데, 역시 손이 크신 명애 언니 해물파전까지 한 장 추가!!
부른 배가 땅에 주저앉을까 두 손으로 받치며 옹기 명가 카페에서 생강차와 레몬유자차로 뱃속을 정리했지만 집에 와서도 배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임산부로 만든다.
생일을 축하해준 사랑하는 이들,
조용히 생각하니 참 '씀 씀 한 행복'이구나 싶어 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한건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하다니... 송구한 마음이다.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랑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더욱 겸손하게 섬기며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2월 18일,
생일인 하루는 첫 휴가를 나온 군인의 그것처럼, 빛의 속도로 지나고 말았다.
아~~
일 년을 어떻게 기다릴거나.
일년 동안 건강하게, 사랑하며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주님 보다 앞서지 않고 뚜벅뚜벅 당신의 뒤를 따라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