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모습이대로..

자라섬캠핑장1

여디디아 2021. 10. 18. 10:50

자라섬 163번
저녁엔 샤브샤브
아침엔 국물로 죽
장작불과 고구마

 

자라섬 속의 무인도
간밤에 내린 된서리로 삶아진 꽃

 

자라섬에서 남도로 가는 둑길에 가을이 내려 앉았다
경강교가 눈앞에..

 

 

다시 찾은 자라섬 캠핑장,

이번엔 화장실이 가까운 163번으로 예약했다.

잠을 자다가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화장실이 멀리 있으면 불편하다. 정말 일어나기 싫고 가기 싫어서 이번엔 작정을 하고 근처에 예약을 했다.

다행인 것은 자라섬 캠핑장은 화장실과 다용도실이 완벽해서 가까이 있어도 냄새가 나거나 흉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덕분에 밤에 화장실 다녀오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갑자기 추워진다는 소식에 화로를 준비했다.

하나씩 늘어가는 소품처럼 짐이 하나씩 많아진다는 어려움이 있는데, 다음부터는 짐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꼭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챙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뚝 떨어진 날씨는 텐트를 설치하고 화롯불을 피우기까지 춥다.

화로를 피우고 몸을 녹이는데 '대박장작'이라며 가평읍내에서 장작을 실은 차가 돌아다니며 장작을 판매한다.

유명산이나 국립공원에서는 장작불 피우기가 금지되어 있는데 자라섬은 장작불을 허용한다.

곳곳에 소화기가 준비되어 있고 재를 담는 통이 마련되어 있어서 안전하기 때문이다.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먹으니 또한 별미이다. 두 개를 가져왔는데 작은 건 반 이상이 숯이 되어서 안타깝다.

 

잠자리에 드니 지난번보다 훨씬 춥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12시에 추워서 깼다. 나는 괜찮은데 옆에 누운 '어르신'이 춥다고 하시니... ㅋㅋ

가스 난롯불을 켜고 텐트 곳곳에 문을 열고도 불안하여 내가 누운 옆에는 찬바람이 휭휭 들어오도록 열어 놓았다.

부탄가스 하나가 수명을 다하니 새벽 3시 반이다.

옆텐트에서 코고는 소리와 춥다는 소리, '밖이 안보다 따뜻하다'는 말이 들리는 걸 보니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추운 가을밤이 확실하다.

 

춥거나 말거나, 옆텐트에서 코를 골거나 말거나, 옆에 누운 어르신께서 춥거나 말거나 여전히 꿀잠이다.

초저녁부터 잤는데 아침 6시반까지 잤다.

집에서는 3시반에서 4시에 일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역시 노숙자 팔자..

혼자 일어나 장작불을 피우고 커피를 끓여 혼자만의 아침을 즐기다 어제 먹다 남은 샤부샤부 국물에 오뚜기밥을 넣어 죽을 끓였는데 별미 중 별미이다.

빵으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준비해 갔는데 추운 가을아침 소고기 죽은 맛도 제대로, 멋도 제대로, 속도 제대로이다.

잔디밭에서 식사를 하니 이곳이 나의 정원인 것 같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지난번 구경한 꽃정원까지 걸어가면서 이번엔 둑길을 택했다.

북한강으로 스미는 가평의 시냇물이 잔잔하고 어느새 섣부른 낙엽이 발끝에 차이며 가을임을 알려준다.

곱게 변하는 나뭇잎들 위에 쏟아지는 가을볕을 바라보며, 지난밤 된서리에 삶아진 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이미 가을이다. 어쩐지 서럽고 어쩐지 슬퍼지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꽃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는 가을과, 가을을 즐기는 가을 사람과, 시들어가는 가을꽃을 바라보며 '자라섬이 참 좋다'를 연발한다.

 

꽃 정원 한 바퀴를 돌고 오니 텐트와 타프가 가을 햇살에 바싹하게 말랐다.

꽃 정원에서 받은 상품권으로 가평읍내에서 오랜만에 쟁반짜장을 먹고 돌아온 길엔 늙어가는 나의 모습처럼,

건방지게 훅 들어온 겨울을 견디느라 가을이 조금씩 앓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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