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불편한 편의점

여디디아 2021. 10. 4. 16:55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 나무옆의자 

 

 

얼마 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끝나고야 말았다. ㅠㅠ

일주일 기다려 1시간 반을 달콤한 마음으로, 화사한 마음으로, 마음속 어딘가에서 봄꽃이 피어나는 마음으로 시청했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두고 어느 비평가는 또 비평했다.

"나쁜 사람은 없고 착한 사람들만 나오는 드라마" 라며 비현실적이라나 뭐라나..

정말 별일이다 싶었다.

TV만 틀면 여기저기 부패한 이야기와 상상을 초월한 악한 일들이 난무하여 세상살이 어느 한 군데 마음 둘 곳이 없는데

착한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끝나는 것이 더 아쉬웠다.

 

세상이 너무 험한 이유인지 몰라도 따뜻한 이야기가 좋다.

'불편한 편의점'은 메이드 빈치를 연상하게 한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며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던 소설 말이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염영숙여사는 사촌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중이다. 수원을 지나 파우치를 찾던 염여사는 파우치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서울역에서도 사용했던 파우치를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아 치매인가 싶은 생각까지 드는 순간 파우치를 주운 서울역 노숙자에게서 전화가 온다.

천안에서 다시 서울역으로 향한 염여사는 노숙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정직하고 선한 사람임을 깨달은 순간, 청파동 자신이 운영하는 ALWAY편의점에 데리고 간다.

배가 고플 때마다 편의점에 들러 산해진미 도시락을 먹는 노숙자 '독고'씨는 어느새 염여사가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 편의점 야간 알바의 자리를 차지한다.

 

주변에 세련되고 멋진 편의점들이 들어서고 때때로 행사를 하므로 염 여사네 편의점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독고 씨가 편의점에 들어온 후 편의점은 조금씩 활기를 띤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독고 씨의 친절과 배려에 마음을 풀고 치유해 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곽 씨가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뒷모습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이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든 손님으로만 대해서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p.252)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는 것도, 치유하는 것도 결국은 관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으로부터(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

가족도 손님이란 생각으로 대한다면 정말 서로를 존중하고 친절과 배려로 살아갈 텐데 말이다.

 

"다들 너무 자기 말만 하잖아. 세상이 중학교 교실도 아니고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살아. 그래서 지구가 인간들 함구하게 하려고 이 역병을 뿌린 거 같아" (p.263)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현실을 대변해 준다.

우리는 모두 잘났고 아는게 너무 많아서 기함을 할 정도이다.

 

노숙자 독고씨가 결국 성형외과 의사였음을 기억하고, 의료사고로 인해 가정이 깨지고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으로 인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어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인생을 배운다.

배려하며 남을 생각하는 편의점 염여사, 자신이 포함된 의료사고에 대해 눈물로 회개하며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독고 씨,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험한 세상이 지탱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불편하여 불편한 편의점이 되었지만 결국 불편한 편의점을 통하여 일으켜 세워지는 사람들을 보는 감동은 크다.

문체의 감미로움은 없지만 현실적인 내용과 표현이 나를 책 앞에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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