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비와 별이 내리는 밤

여디디아 2019. 9. 5. 09:23

 

 

 

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지난 해인가?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었었다.

오래된 저택 스톤하우스를 리모델링해 멋진 호텔로 변신한 곳,

그곳에서 여행객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삶을 나눔으로 서로의 삶을 들여다 보며 자신의 삶을 되짚는 시간을 만들었기에 따뜻하고 아늑한 소설로 기억에 남았었다.

최근에 다시 메이브 빈치의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망설임없이 집어든 <비와 별이 내리는 밤>,

숱한 책 중에서 사람향기가 나는 책을 기다린 탓일까.

부쩍 낯설어지고 달라지는 사람들 앞에서 따뜻하며 진정인 줄 알았던 마음을 붙잡고 싶었을까.

사람 마음이란 것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접기'를 익히고 있다.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은 <그 겨울의 일주일>과 내용이 닮았다.

<비와 별이..> 먼저 쓰여진 소설이고 <그 겨울의..>는 메이브 빈치의 유고작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 겨울의 일주일>이 먼저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두 책은 이어진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치 닮아 있는데 아무래도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그려진 듯 하다.

사람을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과 보듬으며 일으켜 세우려는 마음이 소설로 이어진 것 같다.

소설을 쓰려면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밑바탕이 되어야 할 테니...

 

'그리스 아가아안나'라는 작은 도시에 관광객이 몰려왔다. 

관광객들과 주민들이 바다에서 일어난 화재를 목격하는 것이 책의 초입이다.

자신들이 어제 타고 들어온 배가  지중해 한가운데서 화재로 인하여 타오르는 모습과 어쩌면 '자신'일 수 있었던 '이웃'들이 화재로 인하여 참담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거리가 얼마나 단조롭고 가까운지를 깨닫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든다고 해도 죽음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아가아안나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집을 나간 아들 '아도니 무'를 기다리는 안드레아스와 30년 전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아가아안나로 들어와 정착하게 된 보니, 아내가 집을 나간 후 혼자 살아가는 안드레아스의 형 요르기스,

모두가 상처를 안고 아픔을 삭히며, 기약없는 약속을 소망으로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아가아안나로 여행을 온 여행객들, 캘리포니아에서 온 토머스, 맨체스터에서 온 데이비드, 독일의 유명한 방송국 아나운서인 엘자, 아일랜드에서 온 피오나와 남자친구 셰인이 주인공들이다.

 

<그 겨울의 일주일>처럼 등장인물들 모두 가슴에 돌덩이처럼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기 싫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떠나 온 데이비드,

대학교수로 근무하면서 일년간의 안식년을 맞이해 캘리포니아를 떠나 온 토머스는 자기의 자식이 아니란걸 알지만 자식으로 키워온 아들 '빌'이 새아빠와 같이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앓이를 하고 전처의 남자인 '앤디'가 못마당할 뿐이다.

독일 방송에서 잘 나가던 엘자는 사랑하는 남자 디터로부터 도망쳐 아가아안나로 왔으며, 피오나와 셰인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중이다. 간호사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피오나는 불량배 셰인과 사랑에 빠지고, 피오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셰인의 잘못된 행실을 탓하며 피오나를 염려하지만 피오나는 셰인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셰인을 사랑하며 셰인의 자신을 향한 사랑이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하리라 믿는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또한 상처를 입히며 살아간다.

가깝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를 더 믿어주길 바라고 '나'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사랑하는 애인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또 하나의 '나'이기 때문은 아닐까.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하는 이의 마음,

그것이 사랑의 결정체라고 믿는 것이 또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상대방으로 부터 상처를 받았듯이, 상대방 또한 '나'로 하여금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한다.

 

안드레아스가 운영하는 타베르나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사연을 가진 보니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그들에게 조언함으로 오히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보니의 조언이 맞는 말이란걸 깨닫는다.

집을 나간 아들 '아도니 무'를 기다리는 안드레아스는 그들로부터 아들을 이해하는 방법과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고, 아도니 또한 세월이 흐르고 친구 마노스의 참혹한 죽음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므로 집으로 돌아온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착각을 깨닫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상처가 회복되며 차차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명예와 권력과 재물로 인해 무엇도 부러울 것 없는 남자이지만, 애인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것을 지키며 사랑을 쟁취하려는 디터는 결국 사랑하는 엘자를 잃게 되고, 내 자식이 아니지만 내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며 책임과 의무와 사랑을 끝까지 지키는 토머스는 아름다운 여인 엘자를 얻게된다.     

사랑을 위해서는 '비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을 배우며, 잘못된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 때는 바람처럼 신속히 떠나는 것이 또한 옳은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이란 허울에 자신을 붙잡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지중해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하여 참담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통을 나누고 아픔을 위로하는 여행객들은 그로 인하여 자신을 되찾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다. 또한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서는 용기를 가지기도 한다.

 

메이브 빈치,

이미 고인이 되어 더 이상 그의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가을 장마'라는 낯선 낱말 속에서 맞춤한 책을 읽는시간은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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