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가 우거진 속밭
속밭대피소
진달래대피소
정상을 300m 앞두고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백록담
2015년 2월, 한라산에 눈이 내려도 너~무나 많이 내렸다는 소식은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기쁜 소식이었다.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합류하게 되었던 한라산 백록담 등반...
눈이 많이 쌓여서 길이 어떤지도 모른채, 내려오는 길엔 엉덩이를 철퍼덕 내리깔아 썰매를 타고 내려왔던 기억,
걸어도 걸어도 끝이없던 아득하고 멀던 길... 그래서 한라산의 기억은 내려오는 길이 더 멀게 느껴진다.
그때 찍은 사진을 사무실 벽에 걸어두고 있으니 보는 사람들마다 백두산이냐고 묻는다.
또한 서방이 사진을 보면서 '백록담 한번 가봐야지'하며 부러워하기에 올해를 넘기지 말고 도전하자고 다짐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왔다.
세현이가 회사에서 제주도 한화리조트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제주도 마니아인 엄마를 위해 2박3일을 신청했는데 경쟁자가 많아서 1박 2일만 허락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주는 기회는 무조건 사용해야 다음에도 기회가 온다는 믿음으로 무조건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1박 2일을 한화리조트에서 묵고 나머지는 유니온훼밀리에 예약을 했다.
마침 이스라엘을 출장중이던 세현이가 유니온에 예약했다고 하니 롯데시티호텔로 다시 예약을 해주는 바람에 호사스러운 제주도 여행이 되었으니, 아들 덕 많이 봤다.
12일 저녁에 출발하여 벚꽃이 지고 있는 한화리조트에서 묵으니 몇 년 전 청안이씨 딸들이 함께 묵었던 기억이 새롭다.
13일 아침, 백록담을 등반하려면 전날 저녁부터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리조트에서 한라산을 향하여 가는 20분의 길목을 눈을 비비고 보아도 식당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성판악에 도착하여 해장국을 먹고 김밥을 사고 생수를 준비한다.
한라산에 꽃이 피기에는 이른 계절이고, 눈이 쌓이기엔 늦은 계절이고, 그저 건조한 산에 봄이 더디게 오고 있을 뿐이지만 한라산을 찾는 사람들은 많기만 하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스트레칭을 하라고 성화를 해도 팔을 몇 번 휘휘 돌리고 다리를 끄덕거릴 뿐 아니라 등에 업은 배낭은 풀지도 않은채 교만을 떨고 있는 서방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서 머리부터 시작하여 어깨 허리 다리 발목까지 완벽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성판악을 출발했다.
여행을 앞두고 허리가 아프고 발목이 아프고 여기저기 성치 않아서 염려하며 기도로 준비했지만 은근 걱정이다.
2017년 추석에 서방이랑 사라오름까지 다녀온터라 낯설지 않은 길이다.
처음 시작하는 길은 설레임이 가득하지만 어쩔 수 없이 힘이 들어간다. 나이 탓인가.
1시간을 걸어 속밭대피소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다리가 풀리고 숨겨졌던 본능이 꿈틀댄다.
진달래대피소에 12시까지 도착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속밭대피소에서 커피와 곶감을 먹은 후 다시 진달래대피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서방이 기운이 난다면서 혼자서 달리듯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진달래대피소에 가는 동안 아이처럼 펄펄 날으던 서방이 서서히 뒤쳐지기 시작하는가 했더니 사라오름에 이르니 얼굴이 말씀이 아니시다.
진달래대피소에 도착을 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을 하여 김밥과 과일과 물과 족발을 뜯느라 왁자지껄하다.
"짜장면 배달은 되는데 사발면은 안된대"라는 아저씨의 말씀에 얼마나 웃었던지,
올라오면서 소모되었던 체력이 웃음으로 인해 다시 채워지는 놀라운 효과를 경험한다.
11시에 도착한 진달래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지 않은채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오던 서방이 포기할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울상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당신 평생에 백록담은 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포기하든지 말든지 하라"며 묵묵히 걸으며 한번씩 뒤돌아보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니 죽을 인상을 쓰면서 따라온다.
진달래대피소에서 정상까지의 길은 유난히 돌길이고 오르막이라 힘이 든다.
'내가 다시 백록담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서늘해진다.
정상을 300m 앞두고 쉼터에 이르렀는데 서방이 하늘을 향해 드러 눕는다.
"두 번 다시 올 곳이 아니야. 이젠 끝이야"를 연발하며 뒤집어지는 모습에 옆에 있던 아줌마가 위로가 된다고 하니...
아래로 보이는 제주시내의 모습과 곳곳에 숨겨진 오름을 보지도 못한채 오로지 하늘만 보고 드러누운 서방을 보며,
'다시는 같이 오지 않아야지, 그래서 연하남이랑 결혼을 해야 해'라며 속으로 혀를 차대기도 한다.
눈앞에 보이는 백록담을 보고 싶은 마음에 혼자 정상으로 향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는데 백록담엔 물이 찰랑거리지 않는다. 화산이라 물이 고이질 못하고 새어나가서인가 보다.
백록담의 깨끗한 모습을 보니 행운이 따로 없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을 이렇게 말간 모습으로 볼 수 있다니...
10분을 늦게 도착한 서방이 백록담 앞에 서는 순간, 지금까지의 고생은 잊은 듯 하다.
백두산 천지처럼 물이 가득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드러낸채로 한라산 꼭대기에 선 당당함을 자랑하고 싶은 눈치이다.
서방 왈..
"현숙이한테 선서방이랑 꼭 같이 가라고 해야겠다. 현숙이한테 힘들다고 절대로 말하지 마라"며 주먹다짐을 한다.
아무리 자기동생이 아니고 내동생이라고 저렇게 말을 해야 할까?? 고약한 심뽀다. ㅋㅋ
동생네랑 왔으면 분명히 그랬을거다.
"우린 여기 있을테니 선서방이랑 둘이 잘 다녀와"라고 말이다.
비디오고 오디오다.
멋지다.
말로 할 수 없이 멋진 한라산 백록담...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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