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다리가 말을 들을 때에, 혼자서 씩씩하게 걸을 수 있을 때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겨울이 슬몃 꼬리를 내리자 한라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들썩거린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들썩거리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바람에 들어서 봄바람처럼, 사람들을 툭툭 건드려 들쑤셔 놓았다고 하는게 맞는 말이다.
진에어를 들락거리며 가격이 저렴한 티켓앞에서 마침내 정신이 혼미해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 급히 시간을 확인하자 4명이 반가운 마음으로 선뜻 대답하는 바람에 늦은 친구들은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로!!
티켓을 예매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렌트카를 예약하는 동안 마음은 이미 제주도로 날아가 윗세오름을 지나고 남벽분기점 앞에서 결연한 모습으로 우뚝 선 한라산의 기슭에 나를 부려 놓았음을 알고 있을지. 어쩌면 티켓값을 송금한 친구들도 이미 제주도행 비행기안에서 아래로 흐르는 구름과 푸른 바다위를 내려다보는건 아닐는지.
평소 다리가 좋지 않아 3천만원을 다리에 투자한 김영순집사는 이른새벽에 남편과 함께 천마산을 오르며 비싼 다리에 기름칠을 하고, 열심히 산행을 했던 은희권사는 그새 약해진 다리를 무조건 믿고 의지하며 윗세오름을 바라보고, 이미 두번의 경험이 있는 경자집사는 별무리 없음을 알기에 언니들과 함께할 제주도를 설렘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견뎠다.
무리하지 않기 위하여 그동안 가본 제주도에서 멋진 곳을 소개하기 위하여 고민을 하고, 고심을 하고,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며 고르고 고른 곳은 윗세오름과 비양도이다.
무리라고 생각되면 며칠전 오름오름 책에서 잘 그려진 오름코스를 대신하리라 여기며 준비한 제주도여행의 D-day!
4시에 평내광고에서 모이기로 한 친구들이 미리 도착하는 바람에 4시 공항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마음은 이미 붕붕 떠다니는 어린 학생과도 같다.
여행 첫날아침,
영기씨의 택시로 영실 입구에 도착한 우리에게 구름과 안개가 가득한 한라산이 우리를 반긴다.
몇번을 왔지만 여전히 설레이고 신이 나고 멋진 한라산의 기품이 영실입구에서부터 나를 지배한다.
완전무장을 한 집사님과 권사님,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한 경자집사와 나는 한라산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감탄과 감동이 어느순간, 신음과 탄식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다른 일행들이 여기저기서 역시 신음과 탄식과 포기와 체념의 목소리를 던진다.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라 조금만 더 가시면 정말 좋은 곳,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지을 곳이 기다리고 있다며 권면을 하니 두 팀이 내 말을 믿고 다시 힘을 내어가는 모습을 보며, "제주도 홍보대사로 나서라"는 친구들의 함성을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듣고 있으려나 기대했다는 말이다. ㅎㅎ
쉬멍놀멍 오르는 산길은 어느 한 곳 놓칠 수 없이 이쁘고 멋지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산이기에 내가 그토록 마음에 사모하며 그리워한 곳이었나 보다.
힘이 들고 다리가 땡긴다고 하면서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친구들을 보니 나도 몰래 어깨가 으쓱해지고 자랑스럽다.
오르막을 지나 선작지왓에 도착을 하자 눈 앞에 절경이 펼쳐진다.
6월 3일부터 철쭉제가 시작되는데 이미 철쭉이 지고 있어서 20일은 앞당겨야 한다고 몇번을 말을 했는데 위로 올라오니 이제서야 철쭉이 피기 시작하여 온 산을 붉게 만들어 놓아 마치 그림 속 어느 책장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백록담을 머리에 이고 초원위로 데크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위를 걷는 우리는 마치 천상의 화원을 걷는듯이 황홀경에 도취한다.
윗세오름에 도착을 하니 구름이 걷히고 백록담이 환한 자태를 우리앞에 드러내어 신령한 한라산의 모습을 감상하게 하는가 싶더니 어느순간 구름에 덮히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가 했더니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가 변화무쌍한 한라산의 날씨를 보여준다.
비가 그치고나자 거짓말인 듯이 맑은 날씨가 젖은 엉덩이를 말리고 젖은 배낭을 말리고 젖은 등산화 위에도 태양이 쏟아진다.
윗세오름에서 먹을 수 있는 사발면이 없어져서 많이 아쉽다.
가지고 간 간식들을 나눠먹으니 영실에서부터 날아온 까마귀들이 입을 벌리며 다가온다.
까마귀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곁에서 먹을 것을 채어가는 모습, 여기저기 모여서 간식을 나누기도 하고, 드러누워 젖은 몸과 마음을 말리기도 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선한 웃음을 나누기도 한다.
윗세오름 광장에서 드러눕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엉덩이를 위로 향하여 한라산이 정기를 받아본다.
좋다.
한라산의 정기가 얼마나 강했던지 여행하는 동안 몸무게가 2kg 불어나는 몹쓸 현상까지 겪었다.
한라산에서 마음껏 쉬다가 내려오니 영기씨가 남벽분기점을 타고 백록담을 보고왔느냐고 놀린다.
남양주의 모든 일들을 잊은채로 완전한 쉼을 누리고픈 여인들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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