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책의 내용들이 특별하게 유난스럽거나 불미스럽거나, 불륜스럽지 않고 흔한 일상중에서 감추고 싶은 일들,
자랑하고 싶은 일들, 그리고 혼자 끌어안고 끙끙 거리며 앓아야 하는 일들이라 자꾸만 손이 가는 글이다.
특이한 점은 가족 중심이다는 것이다.
한때 엄마였던 새엄마와 나, 딸과 나, 아들과 나, 그리고 부부의 이야기..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아무것도 아닌 나
우리 안의 천사
영영, 여름
밤이 대관람차
서랍 속의 집
안나
7편이 단편들이 제각각의 재미를 가진다.
수많은 봄꽃들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각각의 내용들이 재밌다.
새엄마, 한때 아버지의 여자였던 엄마와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고 의지하는 관계여서 마음이 따뜻하고,
돈으로 아버지를 위험에 빠트리려는 계획에서 끝내 포섭당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이 놓이고
친구라는 이유로 잘못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의 부주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넉넉하고
나이 50에도 옛애인과 닮은 남자의 모습에서 가슴 설레이는 모습또한 여자임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다.
때로 고3인 딸이 아기를 출생하여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도, 함께 약을 삼키고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남자아이가 보기 싫어 면전에서 내치는 순간에도, 내 딸이라는 이유로 감싸안으며 숨기려는 본능의 모성이 눈물겹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내일이 없었으면 좋을 사람들이 많은 세상살이에도
어느 한 곳에서 빛이 소멸되지 않고 다시 생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서 좋다.
오월의 볕처럼, 수많은 글들이 나에게로 스미어 도닥여주는 듯한 마음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