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지 덕분에 무지하게 헤매임...
기다림은 늘 즐겁고 설렌다.
여행의 즐거움은 기다림과 가방을 싸는 일에서부터 시작이 아닐까?
2월에 제주도행 뱅기표를 예약하지 않았다면 3월 새별오름 들불축제에 다녀왔을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대며 한번쯤 제주의 바다를 날았을텐데... 지루하게 참으며 겨울을 견뎠다.
토요일 새벽 출발과 주일 저녁 제주 출발이 가장 이상적인데, 늘 한발이 늦다.
주일저녁 비행기표는 누가 싹쓸이를 했는지, 아무리 뒤져도 없고, 월요일 첫 비행기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으니..
월요일 아침에 사무실 문을 열어야 하는데, 까이꺼.. 무조건 출발이다.
새벽시간에 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늘 긴장이다.
지난번에도 공항입구에서 헤매임으로 여행의 기분을 망친 기억이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는데, 이건 또..
롯데백화점이 언제 생겼는지, 차가 롯데백화점 주차장을 향하여 뱀이 미끄러운 몸을 옮기듯이 슬슬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아저씨가 출구를 가르쳐 주셔서 바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한순간 진땀이 흘렀다는 사실이다.
제주공항에 도착을 하니 봄비가 내리고 있다. 하필이면..
힐렌트에서 차를 받아 처음 목적지인 한라산 둘레길을 향하여 무작정 출발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가 그어지는 대신 빗줄기가 세차고 굵어진다. 목적지를 앞두고 오름에 관한 책을 출간하느라 정신없을 썬님에게 급히 연락을 취했다.
썬님이 전화로 한라산 둘레길은 불가능하며 수월봉도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으니, 가까운 궷물오름을 추천해 주신다.
'효리네민박' 덕분에 요즘 궷물오름이 뜨기 시작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하고, 큰노꼬메와 족은노꼬메가 이웃하여 있기 때문에 오름을 좋아하는 내게는 맞춤이다.
궷물오름에 도착을 하니 주차장은 텅 비었고 4월의 오름입구는 연둣빛이 출렁인다.
빗방울에 매질을 당하는 나뭇잎과 희부연 안개가 자욱한 오솔길을 바라보니 코가 가득할 코에서 콧물 대신 노래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키 값도 못하는 서방은
"이렇게 아무도 없는 산에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 비도 오고 앞도 안보이는데..어쩌고 저쩌고.." 투덜이다.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돼. 나 혼자 다녀올께"라는 야무진 한마디에 찍~ 소리 못하고 따라나선다.
궷물오름을 향하여 가는 길은 이미 봄이 깊어간다.
제주도는 겨울이 없는 것 처럼 연둣빛의 나뭇잎들이 쏟아지는 빗속에 반짝이고 비를 맞으면서도 새들은 제각각의 소리를 노래하느라 바쁘다.
궷물오름을 지나 족은오름을 향하여 가는 길, 썬님이 그렇게 가르쳐줬건만 길눈이 둔한 나는 어느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빙 돌아서 고사리밭을 지나 왼쪽으로 가야하는데, 푯말을 보니 직진이고, 내린 비로 인해 고사리밭 앞에서 길이 보이질 않아서
무조건 직진을 했다. 인생은 직진이다....
아무리 가도 주차장이 보이질 않고 사람의 흔적도 없이 슬몃 불안한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소리가 나는데, 공사를 위한 차량이다.
"이 길로 1km 공사장이고 오름이니 그런것 없다. 아래로 내려가시면 바리메주차장이 있다"는 말씀에 급이 썬님에게 전화를 하니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바다를 건너 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차라리 돌아가는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이지만, 조릿대가 자욱하고 물이 흥건한 길은 우리의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운동화를 적시고 마음까지 적셨으니.. 결코 돌아갈 서방이 아니다.
시멘트 길을 한시간여 걸어오니 그제서야 큰 길이 보이고, 대중버스는 커녕 택시도 오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다.
폰을 켜니 궷물오름까지 2.25km이며 45분이 걸린단다.
택시가 지나려나 뒤돌아보며 걷다보니 궷물오름이 빗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궷물오름만 보았을 뿐, 족은노꼬메오름이나 큰노꼬메는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려니 아쉽기만 하다.
다음에 꼭 다시와서 족은노꼬메와 큰노꼬메와 바리메까지 찬찬히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혼자서도 걸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의 트레킹은 좀 두려울 것 같아서 아쉽다.
이제 여행은 서방보다는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이 좋고, 그보다는 혼자의 여행이 좋고,
그보다는 자녀와의 여행이 가장 행복한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복구이를 맛보이고 싶어 한시간을 달려 명진전복에 들렀더니 1시간 반을 대기하라는 말씀,
줏어먹어도 수지맞을 것 같은 종가전복으로가서 전복구이와 전복돌솥밥, 전복죽을 주문했는데
서방이 너무나 좋아한다.
여행은 이렇듯 가까운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니온훼밀리에 돌아오니 "진옥씨"라며 반겨주는 아저씨,
비 맞은 나를 위하여 온돌방을 뜨끈뜨끈하게 뎁혀 놓으셨다.
낮에 꺾었던 고사리를 꿈속에서 다시 꺾기 위하여 단시간에 잠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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