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윤동주에게 쓰는 편지

여디디아 2017. 11. 8. 10:35

 

 

 

일본 교수님이 준비해 오신 자료.. 감방의 위치와 화형장의 위치 등

 

 

윤동주에게 쓰는 편지

 

이  진  옥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는 詩를 처음 만났던 10대의 저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무슨 죄가 그리많기에 바람 한 점에도 그토록 괴로워하는지'를...

당신의 삶 2배를 살아온 오늘, 말간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당신의 싯귀를 떠올립니다.

 

어느 오후의 병원에 섰던 살구나무가지가 슬픔을 몰랐듯이 형형색색의 고운 단풍들도 슬픔을 알지 못하는데

저는 그만 하늘을 우러를 수 없어서 꿇은 무릎으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당신의 눈에 마주한 십자가의 형틀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선홍빛의 피 같은 저의 죄악들 앞에 마주 앉고서야

당신을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할 듯 합니다.

 

삶의 어느 하루를 일탈하지 못하게 얽어맨 무게들,

늙은 홀시아버지의 쓸데없는 아집과 이해하려기보다 불만이 태산을 이루도록 방치하는 단단한 나의 고집,

눈을 뜨고 있는 순간에서 눈을 감고 꿈을 꾸는 찰라의 순간까지 함께 해야하는 남편은

사랑의 대상이기 보다는 자주자주 철천지 웬쑤가 되지만,

현실은 올가미가 되어 나를 옭아맴으로 단 하루의 자유조차 간절한 소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청년 윤동주를 만나러 갑니다'

교보문고에서 이 글을 읽는 순간, 제 몸 속에 있는 듯 마는 듯 하던 심장이 안과 겉을 혼동하는 것 같이

밖으로 튀어나올듯이 쿵쾅거림이 얼마나 아프고 신기하던지!

반백년의 삶 속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심장이 뛰는 일을 하라"는 한비야님의 말이 지금임을 기억하며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현해탄을 건너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수줍음이 많으셨다던 당신,

가모가와십리벌 강둑을 거닐으시며

휜 듯한 긴 팔과 껑충한 허리, 가늘고 긴 다리를 휘청이시며

하나님과 조국과 민족과 가족과 친구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생각하시며 그리워하시던 모습이 보일듯도 하여

가모가와를 흐르는 맑은 물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저의 일홈을 부르시며 얼골 가득 잔잔한 미소로 반갑다며 등을 두드려주시는 당신은

제 가슴속에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큰 별로 남음이 제게는 한 없는 축복입니다.

 

2017. 11. 5

 

*일홈(이름), 얼골(얼굴)

 윤동주시인은 그렇게 표기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