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지사(도시샤)대학.. 윤동주가 다닌 대학교
일본대학 최초로 교내에 세워진 윤동주 詩 碑
윤동주 시인에 대해 설명하고 계신 고운기 교수님
정지용 詩碑
동지사 대학교
윤동주의 하숙집 터
교수님가 KBS 기자
송몽규 하숙집 터
윤동주와 송몽규의 하숙집 골목
가모가와 강(윤동주가 사랑하던 강)
교보문고에서 '청년 윤동주를 만나러 갑니다'라는 글을 본 순간, 심장이 안과 밖을 구분하지 못하고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일본에 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 분의 발자취를 걸어본다는 것이 내 평생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는 뛰는 심장이 대신한다.
기다리던 날이 다가오자 정말 기다린 듯이 발목을 잡는 일이 두어 가지 있었지만 마음까지 잡히긴 내 마음이 너무 설레었다.
긴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날아간 일본,
동지사(도시샤)대학으로 가는 발길은 어쩐지 슬픔이 묻었다.
동지사대학은 전체적으로 예배당의 분이기이다.
윤동주가 릿교대학을 중퇴하고 도시샤대학에서 유학을 시작한 것은 일본에 대한 반감과 조선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일본강점기의 억압이 싫었고, 동지사대학을 택한 것은 독실한 기독인이었던 그가 영국 선교사가 세운 대학이면서 영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었다고 하니 그의 조국에 대한 마음이 읽혀진다.
교문을 들어서 빨간 건물들을 지나가니 잉어가 노니는 작은 연못을 두고 윤동주, 정지용의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추모를 하고난 후 꽃다발이 수북하게 쌓여서 학교에서 치우기가 어렵다며 꽃다발을 들고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에 꽃다발을 들고가지 못한다고 하니 학교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비록 빈 손으로 시비를 찾았지만 우리의 간절한 마음과 뜨거운 사랑을 알고 계시리라...
살아생전 그토록 존경하던 정지용시인도 동지사대학에서 유학을 하셨다고 한다.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윤동주님의 시비옆에 옥천에서 직접 제작한 시비를 학교측에 부탁하여 나란히 세웠다고 하니 그들의 큰 마음이 존경스러워진다.
잠시 묵념을 하고 고운기교수님으로부터 학창시절의 일들과 시비가 세워지기까지의 사연들을 듣자니 눈물이 쏟아진다.
이미 여러 책을 통하여 그분의 삶을 알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애통하다.
비록 작고 포라한 시비이지만 윤동주를 잊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며 찾아준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작은 태극기가 그려지고 청년 윤동주의 얼굴이 그려진 작은 돌판을 쓰다듬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동지사대학교를 나와 하숙을 하던 곳을 찾아가는 길에 가모가와십리벌 강을 만난다.
석양이 질 때가 아름답다며 고운기 교수님이 하숙터를 먼저 찾아간다고 하신다.
한 학기를 마친 릿교대학은 이제 조형에술대학으로 바뀌어있다.
윤동주에 빠져서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윤동주시인의 발자취를 찾는데 전심전력한 고운기교수님이 하숙을 하던 주소를 찾아 보니 옛 집은 간 곳이 없고 집 터엔 또다른 집이 들어서 있다고 하며, 당시의 주소와 일치한 곳이 윤동주시인이 하숙한 곳임을 알아내셨다고 하니 그 열심이 또한 감사할 뿐이다.
하숙집 터에 시비를 세우고 윤동주 시인이 하숙한 곳이라는 작은 돌비가 세워져 있다.
조용한 하숙집에서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으시고 밤이 속살거리는 소리를 들으셨다니...
골목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종사촌인 송몽규의 하숙집 터가 있다.
집에서 나와 송몽규를 불러 함께 가와가모강변을 걸으며 동지사대학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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