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하 윤 재 / 판미동
하윤재,
영화감독이며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며 홍보까지 담당하는 나보다 열두세살 쯤 적은 분이다.
2013년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낀 딸은 반항하는 엄마를 온갖 거짓말을 꾸며내어 병원으로 향한다.
설마하던 결과가 알츠하이머라는 판정으로 굳어진 순간, 딸은 의사선생님의 다음 말씀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1남 4녀의 엄마,
"살아 보니 부모 자식 간이 다 같은 부모 자식 간은 아닌것 같대.
그중에서도 유독 인연이 깊은 부모 자식이 따로 있는 기라.
그냥 업보라고 생각해라" (p.110)
치매가 진행되어 길을 잃은 엄마를 찾은 날,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엄마가 건넨 말이다.
그렇게 유독한 정을 나누는 모녀지간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결혼을 하지 않고, 같은 집안에서 아버지와 15년간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막내딸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깊다.
그래서 엄마는 부모 자식같의 인연이 따로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런 딸이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케어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간 글이 기어히 독자의 마음까지 울린다.
엄마의 치매로 인해 엄마를 이해하고자 요양보호사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실습을 함으로 엄마를 환자로 바라보며 엄마를 이해하기 원하고, 엄마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노력하는 딸의 모습이 나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최대한 가족이 책임지겠다는 것..
이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하여 온 가족들이 엄마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나는 그저 부럽기만 하다.
치매의 환자의 기억은
시간, 장소, 인물 순으로 소멸된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 글이 너무나 절실하고, 현실적이라는 것을 안다.
경험한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솔직하고 조금의 과장이나 꾸밈이 없다.
그러나 딸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엄마의 치매 진행은 누구보다 느리다는 사실이다.
이런 딸이 곁에 있다는 것으로 엄마는 큰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라 여겨진다.
딸은 엄마와의 마지막을 위하여 인사를 연습한다.
어느 날, 엄마와 인사조차 나누지 못할 것 같아서 인사 연습을 하고, 기어히 엄마의 정신이 온전할 때 엄마에게 인사를 나눈다.
"엄마, 고마웠고 감사했어요." 식의 인사는 과거형이고.
"엄마 사랑해" 식의 인사는 현재형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날이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마지막 인사말은 바로 이것이다.
"엄마,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자".
마음을 누르며 인사를 건네는 딸에게 엄마는 "만나지 말자"고 대답한다.
"왜? 나 만나기 싫어? 아까는 좋은 인연이라며!"
엄마는 서운해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야 꼭 만나고 싶지. 근데 여서도 이리 니한테 짐이 되는데, 고마, 니는 다음에 더 좋은 부모 만나서 편하게 살아라"
(p.204~205)
책을 읽는내내 요양병원에 누워서 하루종일 지나간 날을 추억하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엄마를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잊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죄스럽다.
또한 엄마의 치매를 알면서도 얼굴 한번 들여다보지 않던 시누이들의 매몰찬 모습들이, 진정 어떠한 사람들인지가 궁금하다.
어쩌면 오빠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며 당연시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그렇게 매정하고 차갑게 대하는 그들이 무서워졌다.
하동에서 아직도 치매에 붙들려 계시는 엄마와 그 엄마를 위하여 한 순간도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몇시간씩 달려가 엄마를 지켜보는 딸의 모습이 겨울바람 끝에 따뜻한 눈물로 매달린다.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신 (0) | 2017.12.14 |
---|---|
82년생 김지영 (0) | 2017.12.13 |
예수와 하나가 되라 (0) | 2017.12.11 |
힐빌리의 노래 (0) | 2017.11.27 |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0) | 2017.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