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집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지가 어느새 3개월이다.
멀리있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가 뵙지도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질 않는다는 이유로 그저 내 살아가기에 바쁜 날이다.
세현이가 결혼한지도 어느새 8개월이 지나고 9개월로 접어든다.
결혼 후 멀리산다는 이유로 외할머니를 찾아뵙지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찾아뵙지 못한 아들과 며느리로 인하여 늘 죄송하고, 아이들을 보면 직장생활로 바쁜 날들이라 하루를 시간내라는 말이 또 입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거리인지라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이기도 하고 직장에 얽매어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환하게 알고있기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내 마음을 엄마도, 아들도 모를 것이 분명하다.
지난번에 세현이에게 '외할머니 인사한번 가자' 고 했더니 9월 2일이 좋겠다고 한다.
금요일 밤에 우리집으로 와서 토요일 새벽 5시반에,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비비며 나서는 아들이 또 짠하다.
선이와 세현이와 함께 세현이가 어렸을적 유난히 외할머니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돌이 되기 전에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며 주현이와 셋이서 몇 개월간을 친정에서 지내고 남편은 정릉 본가에서 지냈던 적이 있다.
그 후에도 여름이 되면 쟁쟁거리며 후려치던 서울의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하여 친정집에 내려가 한달을 보내고
겨울이면 연탄불 하나의 온기로 몸을 녹여야 하는 추위를 피하여 다시 친정으로 달려가 한달을 보내곤 했기 때문에 두 아들이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다.
친할머니는 자주 뵈었고 함께 살았지만 情을 느낄 수 없었지만 시도때도 없이 물고 빨고 하는 외할머니에 대한 情은 두 아들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주현이와 세현이가 외할머니만 보면 "할매요~~" 라며 안겨드는 모습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두 달만에 엄마를 뵈니 그새 살이 많이 내려 손과 팔이 투명한 껍질만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엄마 손이 이렇게 고운 적이 있었던가?' 싶을만치 손이 곱다.
마디가 보이지 않고 손가락마다 굳은살이 배여서 거칠던 엄마의 손이 이젠 곱디고운 섬섬옥수가 되었으니,
죽음앞에서의 인간은 얼마나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마치 바람앞에 놓인 촛불만 같아 내 마음까지 아슬아슬하다.
누가 누구인지 잘 몰라보는 엄마, 셋째딸이라는 말에 "우리 옥이가" 하신다.
세현이라고 알려드리자 손을 잡고는 놓지를 않으신다.
10분이 지나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데 30분이 지나도 "우리 세현이"라며 웃으시는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세현이의 손을 잡고 팔목을 부비며 얼굴을 갖다대는 모습이 얼마나 평안해 보이는지.
아무 걱정도 없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듯이 평안한 모습으로 세현이에게 기대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엄마가 이렇게 편안해 보이던 모습이 언제였나.. 싶을만치 평안하시다.
선이 할머니도 선이 결혼 이틀만에 별세하셨다.
유난히 선이를 사랑하신 할머니가 세현이와 인사갔을 때, 세현이 손을 잡고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이도 외할머니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근하게 대하니 고마울 뿐이다.
이제 살아 생전에는 못 뵐 것 같은 세현이,
그 사실을 알고 엄마는 저렇게 세현이를 놓지 않고 붙잡으실까?
"갔다가 또 오너라"는 말씀을 유난히 자주 하신다.
평소 엄마는 먼 길, 살아가기에 고단한 자식들에게
"난 괜찮으니 오지마라, 난 안아프다. 잘 먹고 잘논다"는 말씀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는데 이번엔 다시오란 말씀만 하신다.
이제 가야한다고 인사를 드리니 눈물이 글썽거린다.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세현이의 손목을 내려놓으며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아득하고 무거운지.
"엄마, 이제 언제 어느 순간에 하늘나라 가실지 모르겠네"라는 세현이의 말을 들으니 울컥하다.
어릴적 외할머니네서 지냈던 기억이 새로운가 보다.
선이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에 보현까지 가서 외할아버지 산소에서 인사를 드리고, 내가 다닌 초등학교를 마치 자기가 다녔던 학교인 듯이 보여주고, 형이랑 동네 아이들이랑 멱을 감고 놀았던 시냇가 까지 선이에게 보여준다.
눈이 부시게 맑고 높은 보현의 하늘이 그림같아서, 이어지는 길들이 영화속의 장면 같아서, 포도밭 주인이, 식당 주인이,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정하게 인사하며 칭찬하는 모습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이며 좋은 곳이라며 선이가 활짝 웃는다.
비단결같은 머릿결을 참빗으로 빗어내리던 엄마,
곱게 빗은 머릿결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언제나 윤기가 흘러넘치던 엄마의 단정한 머릿결,
딸들의 머리를 곱게곱게 빗겨 어여쁘게 땋아주고 묶어주시던 엄마,
흰옥양목 앞치마에 손을 닦아도 닦아도 마르지 않았던 물기들,
부엌이나 논이나 밭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엄마, 남들처럼 쉬지도 못하시고 일하시던 엄마,
명절이면 고모들이 여기저기에서 자식들을 떼로 몰고 오실 때, 철없는 우리는 그저 좋았지만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한 줌 같은 몸피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자식들을 위하여 쉼없이 일하시던 엄마가 이젠 눈꺼풀을 내리는 사실조차 귀찮으시다고 하니..
여느 때처럼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 저 세상으로 갔으면 하던 엄마의 바람이, 마지막 소원이라면 그렇게 편안히 가시도록 기도해야겠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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