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 영 하 / 문학동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p.7)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이 나오다니..
헉~~ 놀랐다. 아주 많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정말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말하는 것인지, 꿈을 꾼 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님 추상적인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글을 읽으면서도 영 헛갈린다.
그야말로 25,6년전쯤 있었던 수원 화성의 연쇄살인을 두고 펼쳐지는 내용인가 하면
언젠가 뉴스로 보았던 치매노인을 돌보던 요양사의 죽음이 들어있기도 하고,
어느 신문에서 보았음직한 일가족 살해의 이야기를 나열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남자 70세 김병수, 알츠하이머 치매로 인해 요양사가 집으로 찾아와 보살펴줘야 하는 독거노인이다.
독거노인인 김병수는 요양사를 자신의 딸로 착각을 한다.
옛날 자신이 죽였던 일가족의 어린 딸 '은희'로 착각을 하고 은희를 지키기 위해 은희의 약혼자라는 박주태라는 인물을 죽이기로 계획을 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박주태는 김병수를 감시하는 경찰이다.
치매로 인해 그의 뇌는 나날이 손상되어가고 미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기억은 과거에 집착을 한다.
또한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녹음기를 가지고 녹음을 하고 돌려서 들어보기도 하고 메모지에 메모를 하여 온 집안에 붙여둠으로 잊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을 하기도 한다.
자신의 증세가 호전되어가는지, 아니면 더 심해지는지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보면 자신을 지키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음도 본다.
그런 그의 기억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 그가 죽였다는 사람들이 그의 망상인지, 아니면 사실인지를 모르겠다.
그가 마지막으로 죽인 사람이 은희 아버지였다고 했나?
은희 아버지를 죽인 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그이 말처럼 쾌감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어린 은희를 죽인 죄의식이 그의 삶을 지배했을까?
존재하지 않는 은희를, 자신을 돌보는 요양사를 은희로 생각하고 그의 아버지를 자신이 죽였다는 것을 숨기고 자신이 은희를 거두어 딸로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느 날 은희가 결혼상대자로 박주태라는 남자를 데려오고 병수는 그를 살인자로 생각한다.
그리고 은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박주태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한다.
정작 박주태를 죽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자신을 돌보던 요양사를 살해하게 된다.
도대체 뒤죽박죽이어서 뭐가 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알츠하이머 치매환자.
글이 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남자의 살인에 대한 고백일까? 기억일까?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는 치매환자의 일상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중증치매환자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치매가 심해지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엄청난 사실은 허구가 아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왔다갔다하는 치매환자의 모습을 나는 사실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시어머니 또한 알츠하이머 치매이다.
점점 뇌가 오그라드는 탓인지,
조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조용한 대문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고 하기도 하고, 대학 4학년이 된 외손녀가 아직도 돌잡이의 외손녀로 기억하고 그 아기를 찾으려 대문을 나서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임으로 시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들이 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주인공 김병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리고 이제는 치매환자가 되어 경찰에 붙잡히게 되고 그의 진술과 자백은 경찰로 하여금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꾸밈인지, 어쩌면 치매를 빙자로 자신의 죄를 얼버무리려는 자세를 보이게 한다.
사람을 죽인 기억은 그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이며 또한 의식속에서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반야심경을 읊조린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가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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