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라!

한라산 백록담을 가다^^*

여디디아 2015. 2. 13. 11:09

 

나~~ 이런 사람이야!!!

한라산 정상 백록담

 멋지지요?

 

 

 

 

 

 

 

 

 

 

 

 

 

 

 

 

 

 

 

 

 

 

1년이 바뀔 때마다 거창하게 새해계획을 세우는, 젊고 푸르른 시절이 나라고 왜 없었겠는가.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이룰 수 없는 계획들을 세우고 작심삼일에 끝난것 같은데,

어느순간 형식적인 계획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자 했다.

어느 해에는 '고운 말을 쓰자'를 정해서 일년동안 입술을 지키는데 신경을 쓴 적이 있었는데 참 좋은 계획이었다.

 

지난해부터는 하루 1시간 이상 독서하기,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기... 뭐 이런 생활위주의 계획을 세웠다.

올해의 계획안에 행여라도 설악산 대청봉이나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슬며시 들어놓기도 했다.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행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세운 계획 중 평생 계획속에는 백두산도 들었고 성경 100독도 야무지게 들어있다.  

 

뜻하지 않게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가게 되었다.

명산트레킹에서 1박2일 코스로 159,000원에 한라산을 등반한다기에 신랑의 허락을 일단 받고, 다음으로 신랑이 회비를 납부하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준비만 했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고나니 정작 가져와야 할 것과 가져오지 않아야 할 짐들이 혀를 차게 만든다.

 

이른아침에 역시 신랑이 태워주는 스포티지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산악회 회원들과 일행을 만나 제주도로 향했다.

전날 제주에 사는 박영기씨로부터 '한라산 입산통제'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밤새 통제가 풀릴 수도 있다는 소식에 하가닥 희망을 품고 다른 한편으론 '내가 갈 수 있을까? 차라리 입산통제로 다른 곳을 가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도 품었다는 사실을 알면 함께한 일행들이 괘씸해하리라. ㅋㅋ

 

성판악에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고 알아들을 수 있는 국산 말과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혼합되어 일행을 잘 따라야 여기서 살아남겠구나 하는 의욕이 앞선다. ㅋ  

아이젠을 신고 스패치를 채우고(아~ 스패치 때문에 스스로 당한 쪽팔림이라니... 남들은 모두가 다리에 딱붙어서 스패치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는데 나만 시뻘건 스패치를 찍찍이로 붙여서 커다랗게 여깄소..티를 내었으니 당장 가서 스패치부터 바꾸리라 생각함)  제주바람을 대비한 서방의 모자에 세현이의 목도리와 장갑까지 칭칭감고 출발한다.

 

진달래대피소에 12시까지 통과해야 정상에 가야한다는 방송이 수시로 내 귀에 들리고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리는 무겁고 일행들은 성큼성큼. 마치 동네한바퀴를 돌듯이 앞으로 전진한다. 그뿐인가, 누군가 조금만 밀리는가 싶으면 주저없이 한발 비켜서 앞으로 돌진을 하는 바람에 짧고 굵은 내 다리는 절절 맬 수 밖에 없다.    

1미터가 넘는 눈밭에서 길은 작은 도랑하나만한 넓이, 사람반 눈 반인 길을 달리기를 하듯이 올라가는 일을 상상이나 했겟는지.

3시간이면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한다는 데 어쩌자고 저렇게 달리기를 하시는지.

눈꽃으로 환한 나무들을 돌아볼 여유도, 눈이 쌓여서 휘이휘이 늘어진 나뭇가지도, 앞뒤에 누가 있는지 쳐다볼 여유도 없이 오직 앞사람의 스패치에 그려진 블랙야크의 얼굴만 바라보며 헉헉대며 올라가는 길.. 죽음이다 정말....     

그러면서도 참을 수 있는건 산은 언제나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생한만큼의 댓가를 반드시 지불하는 산, 나에게 얼마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런 고생을 시키는지... 기대하며 참고 또 참으며 묵묵히 걷고 또 걸으며 백록담을 향하여 오르고 또 오른다.

 

진달래 대피소에 12시까지 도착하는 사람에게 통과한다기에 열심히 올라왔더니 11시가 조금 지났다.

여기서는 좀 먹고 쉬고 커피도 마시고 다시 오르겠지.. 하는 나의 기대는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리듯 여지없이 날아갔으니.. 점심을 먹지 말고 화장실만 다녀오고 그대로 통과한다는 소식이다. (평내교회 산행팀이라면 뭔소리냐며 엉덩이를 끌어 앉히는데..ㅠㅠ)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고 백록담을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사람 반, 눈 반이다.

진달래 대피소를 통과햇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이는지 배도 고프고 카페인도 고파진다.

이리저리 돌아봐도 앉을 자리는 커녕 잠시 서 있을 자리도 없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사람이 많아서 추월도 못하고 천천히 올라갈 수 밖에 없어서 눈치껏 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반에 먹은 샌드위치는 이미 소화가 되어서 뱃속은 빈 상태이다.

염치를 무릅쓰고 쉬자고, 배고파 죽겠다고 소리를 질러서 1미터로 쌓인 눈 위에 철퍼덕 퍼질러 앉아 커피와 치즈와 양갱과 초콜렛을 먹으니 이제야 눈 쌓인 한라산이 보이고 옆사람이 보이고 눈앞에 백록담이 보인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1시간 정도를 오르니 꿈에도 그리던, 평생에 올 수 있을까하던 백록담이 가을하늘보다 청명한 파란하늘을 머리에 이고 하얗게 쌓인 눈과 둥굴게 퍼진 분화구와 감격에 겨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를 반겨준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의 얼굴을 가감없이 내게 보여주는데, 쌓인 눈이 깊고 은밀한 곳을 감추인채로 백록담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자니 내 속에서 무언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느껴진다.

둘러싸인 사람들로 인하여 사진조차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어디가 동쪽이며 서쪽인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 정말 내가 백록담에 서 있구나 싶어진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겨울의 한라산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직접 바라보지 않으면 장엄한 기분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결코 느낄 수가 없다.

지나는 바람이 두고 간 눈송이들이 첩첩이 매달려 두꺼운 고드름이 되어 화살같은 얼음꽃을 피우고

겨울나무의 빈 가지끝에는 두터운 눈꽃들이 처렁처렁하게 매달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하산하는 길은 관음사 방향이라고 한다.

경사진 내리막길은 아이젠 따위는 전혀 무용지물이고 여기저기서 쿵쿵대며 넘어지는 소리와 스스로 멋적어서 웃는 소리는 너와 내가 교대로 하는 소리이다.

어느 순간 앉아서 썰매를 타면서 내려가자는 말에 앞에서부터 엉덩이를 질질 끌며 썰매타기를 시작한다.

어릴적 오빠뒤에 매달려 타본 썰매외에는 썰매를 타본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몇십년만인가.

스틱을 이용해서 앞사람의 등에 가끔 부딪히기도 하면서 내려오는 기분은 최고이다.

 

내려오는 길 역시 만만치가 않다.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고 다리는 자꾸만 앉으라고 재촉을 하고..

다행이 대피소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기 시작.. 걷고 걷고 또 걷고..

8시간에서 9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우리 일행은 7시반만에 하산을 했다.

 

숙소에 들어서니 모처럼 독방 차지이다.

결혼 전 혼자 자취할 때를 생각하니 그때의 자유로움이 어제처럼 생각이 난다.

모처럼 주어진 자유속에 여유를 부려볼까 하는데 어디선가 '내 다리 내놔라'는 소리와 함께

잠은 LTE의 속도로 나를 데려가고 말았다.

 

한라산 백록담..

나를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고, 조금 더 크게 만든 산행이었음에 감사하다.

 

'산이 좋아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화산 은봉산 구은봉산  (0) 2015.08.04
백록담  (0) 2015.02.17
된봉  (0) 2014.12.17
관음봉  (0) 2014.08.07
지리산둘레길 1코스  (0) 201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