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라!

된봉

여디디아 2014. 12. 17. 10:59

 

 

 

 

 

2014년  12월  15일  눈이 펑펑 쏟아지는 이안아파트

 

 

눈 높이가 23cm

 

 

 

누구의 발자국일까?

겨울 단풍

 

된  봉

 

 

 

혼자 지나온 길

 

 

 

가만히 돌아서 생각을 해보니, 어릴적부터 눈이 오는걸 좋아해본 기억이 없다.

유년시절,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면 건너보이는 영천대마을을 가리며 펑펑 쏟아져 내리던 눈이 생각이 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무섭게 두마로 내리달려 고모댁에서 놀다가 어느순간 한살위인 언니지만 같은 학년이어서 친구였던 무순이와 다투고 그 길로 집에 가겠다며 겁없이 보현으로 향하던 그 무모한 걸음앞에 놓였던 눈더미들,

작은 키였지만 허리까지 잠기던 눈 속에서도 집으로 가겠다며 암팡지게 덤비던 그 깡은 대체 뭐였을까?

쪽을 진 고모가 끝까지 나를 붙들거라는 확신보다, 작은언니와 고모가 눈물로 나를 말리는 사실보다 아무래도 더러운 성질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해가 뉘엿거리고 곧 저녁이 시작될 때쯤이면 못이긴척 눌러 앉았기도 했지만 해가 있는 낮이면 여지없이 집으로 돌아왔던 부끄럽고 민망한 기억도 눈을 싫어하는 계기가 되었을까?

설날이면 아버지와 오빠의 뒤를 밟으며 뽀드득거리는 눈위로 배양골에 있는 큰집으로 가서 하얀쌀밥에 고깃국으로 남들보다 이른 명절아침밥을 먹었던 기억, 

눈 내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큰 길로 이어지는 좁은 마당은 늘 아버지의 이른 빗자루가 쓸고가 빗살같은 빗질 자욱이 황토색 흙을 고스란히 드러내놓던 아슴아슴한 기억의 그림들..

그리고 이젠 눈길에서 미끄러져 팔이나 다리나 어느한 곳이라도 골절이 될까봐,

시퍼런 깁스를 하고 어정거리다가 서방에게 이 눈치 저 눈치 당할까봐,

백봉산이나 된봉이나 마음껏 내달릴 수 없을까봐,

세수하기 불편할까봐, 밥을 짓기도 어렵고 먹기도 어려울까봐..

그래서 눈이 반갑지 않다.

 

월요일에 눈 소식이 있었다.

오후가 되더니 펑펑 쏟아져내리는 눈이 범상치 않아서 1시간이나 서둘러 퇴근을 했고, 다른 때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집에 도착을 하니 온 천지가 눈으로 쌓였다.

내일을 걱정하는 어른들의 계산깊은 속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드느라 여기저기에서 눈을 끌어당기느라 바쁘다.

중국에선 쌓인 눈을 구경하기 어렵다는 세현이의 부탁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니 성탄트리가 따로 없다.

 

이렇게 눈이 쌓인 겨울산은 한번쯤 올라주어야 예의일 것 같아서 화요일 아침에 배낭을 챙겼다.

넉넉하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아이젠을 준비하고 스패치를 다리에 감샀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산길은 몇배의 멋을 느끼게 하고 겨울산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고생 또한 몇 갑절이다. 

일주일에 몇번을 걷는 길이지만 하얗게 눈이 덮히고 나니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구멍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푹푹 빠지는 구덩이에 기우뚱거릴 때도 있고 낙엽속에서 발이 묶일 때도 있어 한두번의 꽈당은 혼자서도 민망하다.

하얗게 쌓인 눈을 보니 겨울이면 손 두부를 하던 권복순여사의 두툼한 두부보다 높이가 높다.

아들이 서울에서 온다고, 딸이 먼 길을 달려온다고, 손님같은 사위가 온다는 이유로 추위를 잊은채로 전날부터 흰 콩을 불리고 

새벽부터 맷돌에 갈고, 가마솥에서 조심스레 불을 피우며 간수를 넣고 무거운 돌로 두부자루를 누르던 엄마의 모습,

간두부가 몽글몽글 몽우리가 질 때쯤이면 그릇에 담아서 아버지, 삼촌, 외삼촌, 오빠란 오빠는(외사촌, 고종사촌, 육촌) 눈에 보이는데로 불러서 순두부에 양념장을 휘저어 뜨끈할 때 마시라고 권하던 작은체구의 우리 권복순여사님,

완성된 두부가 매끈하진 않아도 두툼하게 잘라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모습과 모서리에 남은 두부를 딸들에게 건네던 우리엄마 권복순여사님이 하얗게 쌓인 눈 더미 속에 떠오른다.

이젠 눈 꺼풀을 들러올리는 것조차 귀찮고 버겁다는 엄마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난번 백봉산엘 다녀오는데 발 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

2년전에 주현이가 생일선물로 사준 등산화데 어느새 수명이 다 되었나?

안쪽이 닳아서 뒤꿈치가 긁히는것 같더니 오늘도 신발이 좀 어수선하여 발을 괴롭힌다.

아들이 사 준 등산화라 나름 아끼고 신었는데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든다.

내려오는 내내 등산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생기가 도는 것은 다가올 생일이 석달 남았다는 사실이다.

기획상품도 좋고 이월상품도 좋고, 할인기간이면 더 좋고 대박세일이면 더 좋은,

브랜드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검정색도 좋고 보라색도 좋고 빨간색도 괜찮고 파란색도 오케이다.

다만 사이즈는 240이면 좋겠고 선물하는 누구에게도 부담스런 가격은 싫고 기쁜 마음으로 사주면 좋겠다.

내년에 서방이 환갑이라 아들들이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ㅋㅋ         

 

혼자 오를 때는 2시간이면 충분하던 된봉이 눈 덕분에 시간이 훨씬 더 걸리고 힘은 몇배로 들고, 심지어 다리까지 아프더라는 말이다. ㅋㅋ

여기가 된봉인지, 설악산의 대청봉인지, 백두산 천지인지, 

그렇게 고된 산행길이지만 눈 쌓인 된봉은 그야말로 멋지다.    

 

그리고 수요일인 지금, 엉치에 드문드문 느껴지는 고통은 어제의 그 산행탓인가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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