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라!

유명산

여디디아 2014. 7. 18. 09:53

 

 

 

 

 

 

 

 

 

 

 

 

 

2014. 7. 12

평내 새마을금고 산행은 유명산이라는 연락이 왔을 때부터 나는 남다른 마음으로 기대했다.

장마가 시작을 해서 못 갈 수도 있는 시기이지만, 장마는 커녕 마른장마로 인해 가물어 메말라 가는 땅은 비를 기다리다 목이 타고 애가타고, 물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날씨가 덥다는 이유로, 때로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애처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행여 토요일에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까지 가지게 했지만 비는 커녕 조금 흐린 하늘은 얇은 구름이

마치 한삼모시이불인양 뜨거운 태양을 가렸고, 가려진 태양아래에서 마춤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산행을 하는 기분이라니...

 

유명산은 경기도 양평군에 속해있기 때문에 평내에서는 한시간이면 충분하다.

익숙한 길을 달려 도착한 유명산 산행의 출발지는 17여년전에 우리가 시작한 출발지점은 아니다.

처음에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었지만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능선을 타고 걷는 기분은 정말 오롯한 행복이며 알 수 없는 도취감에 빠질 수 밖에 없게한다.

1시간30여분만에 도착한 유명산 정상,

예전보다 많이 변한 듯하지만 여전히 소나무 한그루는 보란듯이 그 자리를 지키고, 기억에 없는 벤치들이 몇개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원추리꽃과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어릴때부터 보아왔던 꽃들마져 나를 시간 저 너머의 추억속으로 데리고 간다.

 

산을 걸을수록, 한시간전의 일들도 잊어버리는 건망증은 어쩌자고 20년이 되어가는 그날의 기억들은 이렇게 생생하고 또렷한지. 마치 거울을 보는듯한 마음이고, 엊그제의 일인 것만 같아서 물기를 머금은 슬픔처럼 나를 설레이게 한다.

추억이란 아팠던 일보다는 아름다운 일들이 아닐까 싶다.  아픈 일은 기억이지만 좋은 일은 추억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름다운 추억이 자꾸만 울고싶은 마음을 가져오는건 대체 무슨 까닭일까?

 

세현이가 창현초등학교 5학년, 지금도 운영되어지는 평내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우고(입은 옷이 도장에서 받은 여름 옷이다) 있었고, 동화중학교 2학년인 주현이는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때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품안에 자식'(딱 그때까지 였던거 같다)이었던 그때, 어쩌자고 우리가족이 유명산으로 향했는지 모르겠다.        

예나지금이나 유명산 계곡은 물이 깨끗하고 시원하며 또한 풍부하다.

바윗돌도 많고 계곡을 따라서 익숙한 산나물도 많았던 곳,

아무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 식구가 정상에 올랐던 유일한 산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는 중에 피었던 연분홍의 연달래꽃, 나날이 짙어가던 초록의 나뭇잎들, 나뭇잎을 반짝이게 만들던 화려한 햇살의 빗살무늬, 가파르게 이어지던 오르막은 나로하여금 벽을 느끼게 했고 정상을 얼마두지 않은 곳에서 어린 세현이가 힘이 들다면 울었던 기억,

 

귀에 마이마이를 꽂고 음악을 들으며, 바닥을 청소하며 오르던 주현이는 그때부터 긴 청바지로 하여금 아빠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청소년기로 진입하던 때가 그때였던 것 같다.

정상에 올라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던 모습들, 계곡길을 더듬으며 내려오던 길은 얼마나 즐거웠던지.

참, 어느 길에서 사람들과 마주치자 주현이가 나를 보고 "누나 조심해"라고 웃으며 뒤돌아 보던 때,

"사람들이 보면 엄마가 아줌마인줄 아니까 누나라고 했어"라던 그 말이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하다니..

(주현이가 내게 그 말을 하던 장소쯤이 갑자기 기억이 나서 혼자 실실 웃는데 정옥자집사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다.)

 

모르겠다,

그날 우리가 먹은 점심이 뭐였는지, 집에서 준비해간 것으로 먹었는지, 삼겹살을 먹었는지, 라면을 먹었는지,

그리고 나는 가족들을 위해서 무얼 준비해 갔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다.

우리가 타고갔던 차가 프레스토였는지, 엘란트라였는지,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두 아들과 함께했던 기억만이 또렷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귀한 추억이기에 나를 아련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용인에서 성희와 인아와 함께 도란도란 이쁘게 살아가는 주현이,

상해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즐기며 공부하며 장래를 설계하는 세현이,

그들이 있기에 오늘날까지 내 일상이 힘들고 고달팠지만 또한 그만치 행복했음을 인정한다.

두 아들이 남겨준 아름다운 추억들, 여기저기 많이 배어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조금 더 남겨두지 못한 섭섭함이 있지만 그건 딸이 아니고 아들이 이유임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로 한다.

 

유명산,

물이 맑고 풍부하여 더욱 유명한 유명산,

유명산의 아름다움보다는 17년전 우리가족들의 발자취들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내게는 더욱 특별한 산이기도 하다.

마을금고에서 출발한 시간부터, 다시 돌아와 마을금고앞에서 하차하는 시간까지,

 

초등학생인 세현이와 중학생인 주현이, 그리고 아직도 청춘인 우리부부의 시간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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