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이다.
길게 기다린 봄이지만 그 날들은 너무나 짧고 짧아 한순간의 꿈처럼 여겨지는 봄이다.
더우기 올해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봄꽃들이 아우성을 치듯이 한꺼번에 피는가 했더니
어느아침 갑자기 겨울로 돌아가 봄비 대신에 봄눈이 내려 힘들게 핀 봄꽃이 얼어버릴까봐 봄꽃 걱정을 한 사람들이 나 뿐이 아니라 곳곳에 많았음을 알게된 것은, 이 봄이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의 계절인지를 깨닫게 했다.
평내새마을금고에서 가는 산행,
4월의 산행지는 진달래가 유명한 강화 고려산이다.
여러가지 약속이 있었지만 일단은 진달래라도 실컷 봐야 이 봄이 지나는 것이 덜 억울할 것만 같아서 동행을 했다.
강화도까지의 거리는 별로 멀지 않지만 강화도란 곳이 워낙에 유명한 곳이기는 하지만 길이 따라주지 못해서 교통체증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강화도 입구에서부터 슬슬 밀리기 시작한 자동차들...
남양주에서 강화까지의 거리보다 강화에서 고려산까지의 진입이 더 먼 듯 하다.
물론 돌아오는 길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아서 길은 온통 먼지투성이다.
앞서가는 이의 바짓가랑이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고 뒤따르는 내 바짓가랑이는 물론 등산화까지 본래의 색상을 잃은채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희꾸무레한 색으로 변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진달래의 향연들,
고향에서만 보았던 꽃송이들의 풍성함이 나를 더욱 들뜨게 한다.
백봉산에나 천마산에서는 이렇게 오지게 핀 진달래가 쉽지 않아사 한번씩 오지게 핀 진달래를 만나면 곁을 떠날줄 모르는데
고려산의 진달래는 하나같이 오지게 피었다.
색상또한 얼마나 진한 참꽃의 모습인지..
함께 살고있는 서방말을 빌리자면 '이런 산골은 군대에서도 못봤다'는 우리 고향 경북 영천군 자양면 보현동.
하기사 하늘아래 첫동네가 바로 20리 떨어진 곳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투명하다는 보현산 천문대가 30분거리에 있으니..
더구나 기상관측대 또한 1시간거리안에서 하늘을 마주보며 날씨와 기온을 예측하는데 정확한 기여를 하는 동네이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어릴적부터 봄을 좋아하는 어중뜨기 소녀였고 평생 꽃이라고는 진달래가 최고의 꽃으로 알고 늙어가는 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진달래는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잇다.
어릴적 이런 봄날의 이른아침에 일찍 일어나신 아버지는 산으로 가셔서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하루치의 일을 하셨던 것 같다.
커다란 나뭇짐위에 환하게 피어있던 진달래꽃다발,
지게를 부리신 아버지는 오지게 핀 진달래를 어린 딸들에게 건네셨고 우리는 각자 학교교실에 가져갈 꽃을 고르고 집안 곳곳에, 물론 그래봤자 방 두개에 마루 한개였던 집이긴 했지만 진달래를 곱게 꽂아두기도 했다.
학교교실의 교탁위에 가져다 두었던 진달래는 초등학교 6학년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가난한 집안탓에 남들처럼 선생님께 하얀 도시락을 내민적도 없었고 남들처럼 술 한잔을 대접하지도 못한 부모님이셨기에...
참 여름이면. 갓 캔 감자를 세숫대야에 담아서 사택에 있는 선생님들 댁으로 한 대야씩 드리기는 했었지만 그건 순전히 나누길 좋아하는 엄마의 가난속에 담긴 유일한 넉넉한 마음탓이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건너마을 산에 불이 붙은 듯이 타오르는 진달래를 향해서 보자기를 가지고 꽃따러 가기도 했다. 평소에 기침이 심한 아버지를 위해서 엄마는 봄에 피는 진달래를 따서 소주를 부어 땅에다 묻어서 발효를 시켜 진달래 꽃주를 담으셨다.
겨울이면 아버지는 진달래 꽃으로 만든 술을 한잔씩 드셨고, 겨울방학을 맞이해 서울에서 온 작은오빠는 뒷방에서 진달래주 한잔씩을 떠오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릇에 술을 담고 홀짝 마시면 그 맛이 얼마나 달고 맛이 있었던지.
오빠가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홀짝홀짝 마셨던 추억이 진달래 꽃처럼 이쁘기만 하다.
그러고보면 진달래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이 이유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나를 진달래꽃 하나만을 최고로 알게 만든 것 같다.
고려산,
구비구비 돌아갈 때마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던 산등성이에 가득하게 핀 진달래,
다음주부터 진달래 축제라고 하는데 이미 꽃은 만개를 했다.
고운 진달래를 보기 위해 산을 찾는 모든 이들도 나처럼 이쁘고 고운 추억 하나쯤은 가졌으리라.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보내 드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살며시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화려한 봄날이 진다.
늦기전에 봄꽃속에 빠져보는 사치스런 봄날은 즐기는 자가 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