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금 성 녀
은 희 경 / 중앙일보 문예중앙
해가 바뀌고 날이 바뀌어도 늘 그 날이 그 날이다.
연말년시가 되면 호들갑스럽게 한해가 오가는 사실에 떠들썩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여전하다.
똑 같은 날이고 똑 같은 사람이고 여전한 일상이다.
한해를 보내며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일상까지도 세월의 구석에 쳐박고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일상이 새롭게 시작되는, 포장지를 뜯지 않는 선물상자처럼 찾아오지 않은 다음에야 사실은 그게 그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고 있음과 세월이 흐르고 있음과 거기에 따라 나 또한 조금씩 알맞게, 때론 이르게 때론 한꺼번에 많이 늙어간다는 것을 느끼고 깨닫는 때가 있다.
매년 새로운 수상자가 나오고 새로운 책이 출판되고 기다렸다가 읽을 때쯤이면 역시 세월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쏟아진 단편들 중에서 황순원소설의 수상작은 가려진다.
매년 하반기가 지날 쯤이면 중앙일보에서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을 확인하고 그럴때마다 나는 빨리 수상자가 결정되고 책이 출판되었으면 싶어 은근히 기다린다.
詩의 경우는 한편씩 신문에 실으며 평을 하고 독자들에게 미리 맛을 보게도 하고 스스로 어떤 판단도 해 볼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미당문학상은 詩를 위한 것이고 황순원문학상은 단편소설을 기준으로 한다.
물론 내가 기다리는 것도 황순원문학상이다.
제14회 대상은 은희경의 금성녀가 차지했다.
한때 좋아했던 은희경을 돌아보지 않은지 몇년이 지났다.
오랫만에 읽는 은희경의 '금성녀'는 오랫만에 은희경의 모습이 나타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기준영 - 이상한 정열
백민석 - 수림
윤이형 - 루카
이기호 -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전경린 - 맥도날드 멜랑콜리아
전성태 - 성묘
정이현 - 영영, 여름
천운영 - 다른 얼굴
모든 작품이 재미가 있고 의미가 담겨 있어서 역시 상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끄는 작품은 전성태의 '성묘'이다.
군인출신의 박노인은 부대입구의 마을에서 적군묘지를 바라보며 '승리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부대를 오가는 군인들은 물론이고 전역을 하는 군인이 누구인지, 고참을 이어받아 들어오는 신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고
부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까지도 알고 있는 박노인,
그런 박노인에게 중대장들은 새로운 고참을 잠시 맡겨놓으며 신참의 고충을 알아내기도 하는 자상한 노인이기도 하다.
수시로 허리가 아파서 드러눕는 할머니의 도시로의 이주에 자신을 돌아보며 역시 당신의 배우자는 허리가 아프고 잔소리가 심한 할머니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고추밭옆에 있는 적군묘지에 때가되면 제묘를 지낸다는 사실이다.
중공군이나 북한군의 묘지로 구성된 곳에 누구도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는 박노인은 쓸쓸하게 죽어간 병사들을 위하여 자신의 사비를 들여 제사를 지내주게 된다.
박노인이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을 알게된 군부대에서 때가 되면 돈을 모아서 제사비에 보태라고 주기도 한다.
노인이 정성을 다해서 적군들의 묘지에 상을 차리고 정성껏 절을 올리며 예의를 표시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중공군이건 북한군이건 누구든 어느 집안의 아들이며 혹은 가장일지 모르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끝까지 애도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소설이 끝나도 나는 어쩐지 아쉬워 눈을뗄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소설이다.
이런 좋은 작품들을 읽으니 어쩐지 마음속에 든든함이 채워진다.
독서의 맛은 바로 이런거 아닌가!!
올해도 열심히 읽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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