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모습이대로..

결혼31주년기념일

여디디아 2014. 12. 12. 12:11

 

 

 

 

 

 

 

 

 

 

 

뭐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결혼기념일,

아니 요즘은 차라리 독신으로 평생 살았으면 어쩌면 더 좋았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자주자주 한다.

어제 남편이 의정부 법원에 갔더니 어느 노부부가 이혼 후 위자료 문제로 법원에서 다투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법정판결에서 판결이 난 위자료를 주지 않는 영감님은 돈이 없어서 못준다는 것이고, 할머니는 빨리 돈을 달라고 다투는 모습을 보고 '다 늙어서 무슨 짓이냐'며 뒷담화를 곁들인다.

요즘 황혼이혼이 심심찮다. 

황혼이혼을 바라보는 시각도 각각 형편과 환경에 따라 달라짐을 몸소 느낀다.

처음엔 오죽하면..이라고 생각하다가 잠시 더 생각하면 공감이 가고, 다시 조금 더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 다시 1분여를 더 생각하면 당장 도농리에 줄줄이 이어진 법무사 사무실로 내가 달려가고도 싶고, 마음처럼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다시 포기하고 '그래, 이대로 살아가는거야'하는 자포자기가 나를 축 쳐지게 만들고만다.

그렇게 중뿔나게 신날 일도 아니고, 특별히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기억한다면 후회가 치밀고), 그러다보니 개뿔 결혼기념일은 특별하나.. 싶어서 이마져도 서리맞은 호박잎처럼 시들해져 버렸다.

 

어제 낮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인호씨인가요" 라고 하는데 보이스피싱 전화라는 의구심이 들어온다.

"아닌데요,

 그럼 어머님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따님이 김성희씨 맞죠? (머시라.. 따님이라면 딸을 말하는거 아닌가?)    

 네? 누구요?

 김성희씨가 따님이 맞으시죠? (김성희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10초간 침묵.. 아~ 우리성희가 있지.

이건 분명 보이스피싱이다. 그러면 좀 놀려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차분해진다)

 네, 그런데요? 왜요?

 네, 따님이 뚜레쥬르 케잌 주문배달을 신청하셨어요. 2시쯤 뵙겠습니다" 

보이스피싱이라 확신한 남자는 뚜레쥬르에서 케잌 때문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거는 방법부터 좀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오후가 되니 케잌과 함께 샴 페인이 배달되었다.

성희의 부탁으로 카드가 함께 도착을 했는데 글씨라고는 참.. 차라리 컴퓨터로 타이프를 하는게 더 좋을 듯 하다.

'샴페인은 무알콜이라 어머님도 드셔도 괜찮으실꺼에요^*^' 라는 성희의 문자

분명 무알콜이라고 했는데 저녁에 달달하고 톡 쏘는 맛에 두 잔을 마셨더니 수면제를 섞은듯이 잠이 쏟아져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죽음처럼 깊은 숙면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동면을 한 기분이다.

 

"축하합니다.

 우리가족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세현

"서프라이즈로 보내려고 했는데 전화를 했네요.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성희

"우리도 엄마 아빠처럼 인아 잘 키우고 오랫동안 잘살께.

 결혼기념일 축하해" 주현

 

아이들의 문자와, 성희의 깜짝선물을 보며 '이거면 됐다'라는 생각이 든다.

더 무슨 욕심이 필요할까.

이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이미 내 삶의 존재는 이유가 되었으니...

 

명찰붙은 날이라고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먹자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니 35,000원 이상이다.

그래도 한끼 식사하자는 남편의 부추김이 있었지만 어차피 내일아침이면 黃으로 나올 일인데 어쩐지 허영같이 여겨진다.

 

가을부터 옆건물 센터폴에서 세일한다는 이유로 길거리에 세워둔 아웃도어에서 겨울조끼를 눈여겨 봤었다.

농협에 가면서 눈으로 보고 돌아오는 길에 손으로 만져보고, 다시 지나는 길에서 가격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서 기어코 헹거에서 꺼내서 요리조리 뜯어보고 몸에 대어보고, 색상을 확인하고 부피를 확인까지 했던 겨울조끼,

겨울이 되면서부터 산행길에 가끔 조끼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남편에게 선물로 조끼하나 사고싶다고 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이라 혼자가서 사오겠다는데 굳이 자기 손으로 계산을 하겠다고 따라 나선다.

60% 할인을 해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니어서인지, 내가 좋아해서인지, 연신 흐뭇해한다.

겨울조끼 하나 장만했으니 영하 10도의 날씨에서 당장 백봉산엘 올라서 인증샷을 했다는 소식이다. ㅋ

 

비싼 저녁대신 거래처인 '회뜨는총각'에서 모듬회를 먹고 멍게비빔밥까지 먹으니 알뜰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거래처에서 식사를 함으로 체면도 세워지고 비싼 저녁 대신에 겨울조끼까지 하나 선물로 받았으니..

 

결혼31주년,

사랑도 情도 아닌 습관처럼 살아가는 날일지라도, 아니 일주일에 한번쯤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날일지라도

나를 존재케 하는 이유들이 있으므로 내게 주어지는 시간들이 또한 감사치 않고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세현이와 성희와 주현아, 그리고 인아야^^*

고맙다.

너희들로 하여금 행복하고 감사하구나.

 

사랑하고 축복한다^^*

 

   

'내모습이대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직감사예배  (0) 2015.03.17
생일  (0) 2015.03.09
2014.1.1  (0) 2014.01.02
김형경을 만나다^^*  (0) 2013.12.31
이향자권사님과 함께^^*  (0) 201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