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부터 현대 로지스틱스 중국 상해에서 근무하는 세현이가 취업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왔다.
회사에서 비행기표를 구매해 주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온 세현이는 오자마자 친구들과 1박2일 낚시를 다녀오고
하루는 대학동기들을 만나고 하루는 동네 절친(중고등학교)들을 만나고, 하루는 교회친구들을, 하루는 여친을 만난다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올 때도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는 아들이더니 직장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얼굴 뵈옵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부자간의 상봉은 집에온 지 5일이 된 날이었나...
아빠가 잘 때 들어오고, 아들이 잘 때 아빠가 출근하고..
특별할거 없는 형제간이지만 그래도 서로의 움직음은 예의 주시하는 듯...
카톡이란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온가족이 그룹을 만들어 시도때도 없이 "까똑까똑" 거리다보니
마치 곁에 있는듯이 서로의 소식이 뻔하다.
세현이의 날짜와 시간을 아는 주현이와 성희가 또... 집으로 올 일이 생겼으니 쪼끔 미안하다.
성희가 추석이후 자주 시댁에 들락거림을 알고있는 세현이가 용인으로 간다고 했고 앉을 자리도 없다며 주현이가 대신 집으로 오겠다고...
주말에 집으로 오겠다는 주현이네를 생각하다가 오랫만에 속초 물치항으로 회를 먹으러가자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다.
어른만 다섯명이고 인아까지 합하면 여섯식구가 움직여야 하고 우리는 당연히 우리집 스포티지로 움직이자고 했더니
아들둘이 불편하다며 펄쩍 뛴다.
인아 카시트도 해야하고..
주현이의 경차 쉐보레와 두대를 움직이려니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다고 세현이가 스타렉스를 렌트했다.
토요일에 성희가 치과를 다녀와서 오겠다는 약속을 듣고 아침부터 준비시작~
주현이의 편식이 워낙 심해서 초등학교 도시락엔 늘 동원참치 하나와 양반김 하나가 전부였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주현이 어머니 바쁘셔서 주현이 도시락 반찬을 만드실 시간이 없나봐요"라고...
편식이 심한 주현이는 소풍날에 김밥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대신 찹쌀을 씻어 밥을 짓고, 쇠고기를 갈아서 양념을 해서 볶아 밥과 함께 비벼서 은박지에다 하나씩 포장을 했다.
주먹밥이지만 고급스럽고 특이한 엄마표 주먹밥...
오랫만의 가족여행이라 지난날을 생각하며 주먹밥을 만들고 김밥을 말고 겉절이까지 하다보니 시간은 가을산이 태양를 품은채 가뭇없이 흐르고 늙어가는 육신은 지쳐만 갔으니...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이고 돈으로 해결될 일을 굳이 이렇게까지 미련하게 만드는 자신이 딱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였으니...
아들들을 위하여 아이스커피를 준비하고 며느리를 위하여 탄산수를 준비하고 서방과 나를 위하여 1회용 커피와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손녀인 인아를 위해서 밤을 까서 밤죽을 만들고...
집에계신 시부모님을 위하여 사골을 고아 끓이고 김밥을 정리해서 담아두고...
아뿔싸^^*
3일이 개천절이고 공휴일인 사실을 잊어버린채 전단지 주문을 받았고 3일 저녁에 된다고 큰소리 쳤더니,
물건을 찾으러 오신 손님께 서방은 손과발을 모으고 비비적비비적.. 토요일 오후에 오시라고..
모처럼의 가족여행을 혼자서 빠지겠다니 이 무슨 당치않은 소린지.
이럴때 고마운건 동생이란 존재이다.
평내광고 셔터 문을 내리는 걸 나만큼이나 안타까워하는 동생이 토요일 오후에 사무실을 지키겠다고 선뜻,
두말없이 열쇠를 받아주니 우리 엄마 아버지가 얼마나 자식농사를 잘 지으셨는지.. 감사가 덩실덩실이다.
어려울 때마다 만사를 제껴두고 형편을 살펴주는 제비꽃 동생에게 감사 감사^^*
12시쯤 오겠다던 주현이는 미어터지는 치과손님으로 인해 1시반이 넘어서야 들어섰다.
두 아들이 교대로 운전을 하고 세 여자는 뒷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풀고 제주도 여행담을 늘어놓고..
김밥과 주먹밥과 커피와 탄산수로 주린 배를 채우며 가는 길은, 오전내내 힘들었던 나의 애씀들이 한번에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4시반이 되어서 도착한 물치항,
속초는 이미 가을을 지나 초겨울의 입구에 들어서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도 거세고 속초앞바다의 파도도 거칠다.
넓은 바다와 힘차게 요동치며 뒤집어지는 파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인아,
어렵게 모인 식구들이니 인증샷은 필수사항이라 지나는 분에게 사진을 부탁하여 찰칵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긴다.
물치항에서 광어와 돔, 몸값이 비싸다는 오징어와 고등어를 회로 쳐서 먹으니 조금전에 먹었던 요란한 것들은 이미 소화가 되어버린 듯하다. 회를 먹는동안 이제 제법 커버린 인아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물고기 구경을 하고, 구경이 끝난 후 할아버지는 팔이 후들거린다고 하니.. 사람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마냥 어릴줄 알았던 주현이와 세현이,
주현인 결혼 후 달라진 마음으로 세상과 맞대하고 삶에 충실히 젖어들어 가는 과정에 있다.
성희와 인아와 함께 아끼며 무엇보다 절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만 하다.
당당히 세상으로 걸어나가 세계을 품기 소원하는 세현이,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는 세현이의 말 한마디가 투박하고 거친 내 마음에 고운 꽃 한송이를 피워올린다.
밤에 집으로 가서 편하게 쉬어라고 해도 모처럼 집에서 맥주 한잔 하겠다는 주현이의 말에 세 남자가 집에서 밤이 깊도록 맥주를 따르고 치킨을 뜯는동안, 가을은 혼자 고와지지 않고 세 남자와 세 여자까지 고운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풍성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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