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in 순천 에코 힐링 여행
정확히 말하자면 5월부터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 순천이란 곳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대한민국 전라도 땅 어디쯤에 있는 곳, 태백산맥을 읽노라면 '순천가서 힘 자랑하지 말라'는 말에 어쩌면 깡패가 많을 것 같은 순천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어오는 것은, 친구 정심이가 5월말에 평내를 떠나 순천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역시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것이다.
오십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인정하기 싫은 나이이고, 할머니가 되기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지만 할머니 소리는 결코 반갑지 않은, 사위를 얻고 며느리를 얻어야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곁에 끼고 있는 아들과 딸이 걱정보다는 애틋하고 더 끼고있고 싶은, 어느순간 빨리 짝을 찾아보내야 한다는걸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에 잠시 잠을 잊기도 하는 나이, 내 자식의 나이나 인물보다는 좀 더 근사한 남의 아들을 혼자서 고르기도 하고, 상상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이쁘고 야무지고 얌전한 아가씨를 보면 아들의 마음보다는 엄마의 마음이 먼저 조급해져 며느리로 달랑 보쌈해오고 싶은...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포용하고, 적당히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적당히 이해도 하고, 또 적당한 마음으로 두루뭉실하게 넘어갈 수 있는 여자나이 오십대 후반으로 들어서는 천진하기도 하고, 야무지기도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다시 열어서 찾을 음식을 꺼내며 한숨을 폭폭 내쉬기도 하고, 손에든 핸드폰을 찾느라 가방을 뒤지고 그것도 모자라 집안으로 다시 핸드폰을 찾으러 들어갔다 나오는 길에 '아~ 나도 치매인가?' 싶어서 우울해지는 그런 나이, 그런 시기, 그런 때...
그런 여자들이 59년 돼지띠들이다.
순천으로 이사한 정심이는 아직 평내와 평내교회와 평내교회 돼지띠들을 잊지 못하고 외로워하고, 낮이면 사람구경도 할 수 없다는 말과 향수병에 시달릴 것 같은 외로움으로 도자기 피부가 행여 주름으로 가득해질까봐, 늦기전에 위문여행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올봄에 천안으로 이사한 경숙이는 내리 이어지는 여행계획(더구나 1박2일이 두 개나 예약되어 있다는 부러운~~) 때문에 남편보기 미안해서 빠지고, 경자는 시골에 계신 구순을 넘기신 시부모님이 오셔서 시아버지는 병원에, 사어머님은 하루종일 보살핌속에 계셔야 함으로 눈물을 머금고 함께하지 못한채,
영숙, 현숙, 형임, 진옥이는 열차티켓을 예매한 그날부터 설레이기 시작했더라는...
7월 5일 6시45분 열차를 타기 위해서 평내에서 용산으로 가는 차는 김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뿐임을 알았을 때,
네 여자의 남편들을 뒷조사하니 모두가 김기사였다는 어이없는 사실에, 우린 또 한바탕 웃어제칠 수밖에...
만만한게 서방이더라고, 역시 내 서방이 만만해서 이른새벽에 수다쟁이 여자 넷을 모시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용산역앞에 내리니 '그들이 몰려온다'는 그림은 우리에게 딱 맞는 말이다.
6시45분에 출발한 열차는 관광객을 위한 열차인 탓인지 빈 자리가 많다.
1시에 깼다가 2시에 깼다가.. 자다깨다를 반복했다는 친구들, 2시39분에 잠이 깨어 이후 도저히 잠이 들지 못한 나를 비롯해서 순천에 있는 정심이 역시 자다깼다를 반복했다니 역시 우리는 소녀의 감성을 그대로 품고 살아가나 보다.
순천까지의 4시간의 거리는 마치 40분인듯이 지나간다.
감추고 싶은 치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쉽게 드러낼 수 없던 이야기, 이제는 자랑이 아니라 마음고생과 고민과 걱정들과 힘겹게 살아온 날들을 풀어놓으니, 사람살아가는 일은 누구나 다 비슷한 듯 하다.
속엣 것들을 풀어놓는 순간, 우리는 한 두름에 엮어진 굴비처럼 함께 엮인 듯도 하고, 무언가를 함께 짊어진 동지같은 느낌이고, 따뜻하고 좋은 친구를 얻었다는 마음에 힘겨운 일들이 위로로 어깨를 가볍게 하고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열차가 순천역에 정차했지만 단순한 내 머리는 '종점에서 열차가 멈추리라'는 생각에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수다의 연속이다. 재치있고 순발력있고 호기심 가득한 현숙이가 밖을 살피더니 여기가 순천인데 내려야하는것 아니냐고.. 옆 사람에게 물으니 이 열차는 여수까지 간단다. ㅋㅋ
59년 돼지띠들의 행동이 이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마치 출발선상에 선 달리기 선수처럼, 어쩌면 튕겨오르는 스프링처럼 재빨리 가방을 챙기고 열차에서 내리는데 몇초가 걸렸을까. 우리가 내리자마자 열차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여수를 향하여 칙칙폭폭 떠나가 버리더라는...
밖에서 기다리는 정심이를 잊은채로, 여수까지 갈 뻔한 무용담을 수다로, 수다속에 웃음으로 , 웃음속에 허리를 잡고 배꼽을 잡으며 나오니, 도자기빛의 얼굴을 하고, 배낭하나를 달랑 짊어진 정심이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향하여 손을 흔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다.
몇초만 늦었으면 우리는 여수까지 갔을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정심이의 얼굴을 보니 순천에 내린 것이 이제야 마음이 놓여서 함께 손을 흔들며 순천에도 '그들이 몰려왔음'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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