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직은 넉넉하게 남은 날들이 많으려니...하는 마음은 미련많고 질질끌기 좋아하는 내 성미탓인가보다.
어쩐지 가는 세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주춤거리며 늦추고 싶은 마음, 이것이 늙어가는 모양새가 아닐까싶다.
올봄부터 시간에 쫓기다보니 산에 갈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마음과는 달리 폭퐁으로 한 다이나마이트는 틈만 나면 살을 가져다주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 아침산행이다.
아침산행을 위해선 전날 저녁시간 1시간을 더 움직여야 하고 당일 아침 30분은 잠을 양보해야 하지만 운동을 위해선 무언가는 양보해야한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피곤한 몸을, 달콤한 잠을 밀어내고 지금은 일주일에 서너번은 아침산행을 한다.
처음에 미지근하게 따라오던 신랑도 이젠 가끔 아침밥을 봉구스버거로 해결할만치 적극적으로 함께함이 성과라면 성과이다.
문제는 나 혼자만의 일에서 끝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더러는 동생을 불러내서 여름산에서 아침땀을 흘리게하고, 아침부터 숨을 턱에 차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도 부족하여 교회 동생집사님들을 불러내어 세수를 미루게 하고 아침 설거지를 미루게 한다.
방학때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학기중에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지난 화요일에 이어 오늘아침에도 바쁜 집사님들을 들쑤셨다.
나는 봉구스밥버거에서 밥을 준비하고 이 집사는 과일을, 남 집사는 커피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른아침에 산에 오르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산에서 먹는 아침밥이 특별하기도 하고
산에서 마시는 커피의 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오묘한 맛임을... 알 사람은 알리라. ㅋ
가을이 무르익어 단풍은 지칠대로 지쳐있고 산길은 낙엽으로 가득쌓여서 잔뜩 긴장을 해야하지만
우리눈에 닿는 가을은 여전히 이쁘고 아름답고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충만함을 채워준다.
몸이 좋지 않은 동생이 얼굴을 붉히며 따라오느라 힘든 모습이어서 조금 안쓰러웠지만 험한 길이 아니고 능선길이라 별 무리없이 다녀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진사에서 오르는 길은 오르막도 별로 힘들지 않지만 천마산기도원을 아래에 두고 길게 이어지는 능선길은 정말이지 오붓하고 편안하고 아득하게 평화롭다.
아름다운 가을날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겨울에 가려질 것이라는 생각에 몸 보다 마음이 먼저 추워진다.
참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을아침의 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