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아들 세현아!!
아침에 일어나니 뽀얗게 눈이 쌓였더니 출근길엔 진눈깨비가 백봉산을 덮고 천마산을 덮고 우리가 지나는 경춘국도를 덮고
못내는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덮여 운전하는 아빠는 눈 쌓인 나무를 감상하기 보다는 앞차와의 차간거리를 염려했고 옆에 앉은 나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가득하게 쌓인 눈을 바라보며 겨울의 아름다움을 잠시 느껴보았다.
마치터널을 지나고 호평동으로 들어서니 어쩌면 다른 세상처럼 겨울비가 내리더구나.
봄옷을 입은 기상캐스터가 남쪽에 내리는 겨울비가 밤에는 눈으로 변한다는 소식에 문득 겨울비가 몹시 그리웠거든.
그로부터 오후가 된 지금까지 내내 겨울비가 손님처럼, 첫사랑의 그 남자처럼 내리는구나.
점심식사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에 곱게 접어둔 우산을 편채 겨울비를 맞으며 겨울속을 기분좋게 걸었는데 글쎄,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물세례를 퍼부었지 뭐냐.
토요일에 세탁해서 아침에 입은 오리털파카와 몸에 딱 붙어서 조이듯이 꽉 끼는 청바지가 어쩐지 날씬해 보여서 아끼는 옷을 입었는데 물벼락을 통해 홀딱 젖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크림색차 252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용서할 수 있었던건 순전히 이놈의 겨울비 탓이었단다.
사랑하는 우리세현아!
토요일에 집에 갔더니 떡~하니 작은 곰 한마리가 예쁜 박스에 담긴채로 왔더구나.
편지봉투의 멋진 글씨는 네 솜씨가 아닌것을 보니 아무래도 회사에서 단체로 출력했나보다. 맞지? ㅋㅋ
연수중에 강사들이 와서 교육을 하는중에 6시간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네 솜씨,
신기하고 이뻐서 어느 유명백화점에서 팔고있는 상품같기만 하다.
바느질에다 풀칠에다 오리고 붙히고 꿰맸다는 말에 고생깨나 했구나..싶어진다.
유독 미술솜씨와 바느질 솜씨가 없는 나를 닮아서인지, 우리집 아들들은 만들기나 그리기, 조각이나 뭐 그런 예술적인 면에는 꽝이란걸 내가 잘알지.
형이랑 초등학교때 홍익대 미대를 나온 집사님께 미술과외를 받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인 두 아들을 보며 난 이미 포기를 했거든.
세현아^^*
연수가 끝나면 본격적인 일터로 나가서 경쟁같은 삶을 살아내어야함을 알기에 지금 열심히 즐긴다는 네 말,
반갑고 좋았단다.
어쩌면 이 마지막의 수련회같은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누구보다 더 즐기는 너를 보면 세상과 마주할 때도 역시 열심히 즐겁게 부딪히리란 믿음이 앞서는구나.
그래서 든든하고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애닯은 엄마의 마음이란다.
사랑하는 세현아^^*
이제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다고?
그 말을 들으니 이젠 탱자탱자 놀면서 여행이나 즐기고 싶어지는구나. ㅋㅋ
그리고 손주 볼 준비를 하라니... 이건 어떻게 하는겨?
네 글을 읽으며 아빠와 함께 한참을 웃었단다.
세현아^^*
오전에는 형이 어제 시험본 펀드자격시험 합격소식을 알려와서 기분이 좋구나.
직장다니며 틈틈히 공부하더니 턱걸이든 뭐든 합격을 했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천재 아니냐?'고 물었더니 형 대답이 '그런것 같다'고 하더라. ㅋㅋ
아들들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니 엄마역시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를 허둥대는구나.
세현아^^*
금요일이면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오는구나.
그리고 다시 짐을 챙겨서 정말 엄마와는 멀어지는구나.
어쩐지 쓸쓸하게 여겨진다.
엄마의 욕심이지?
슬슬 떠나보내야 이담에 몹쓸 시어머니가 되지 않을테지?
사랑하는 세현아^^*
겨울비가 하염없이 내리는구나.
빗속을 자박자박 걸어서 가노라면 어디쯤에서 하품을 입에문 봄꽃을 만날 수 있을까?
보고싶은 아들
사랑하고 축복해요^^*
겨울비 내리는 오후에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