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엄마 생신

여디디아 2013. 1. 7. 14:58

 

 

 

 

 

 

 

 

 

 

 

 

 

 

 

 

 

엄마를 생각하면 몇십년전의 엄마 모습이 우선이다.

흰 옥양목 앞치마가 벗어질 날이 없었고, 흰 머릿수건이 벗어진 날 없었던 때,

정작  흰옥양목뒤에 숨어있던 치마와 저고리의 색상은 기억에도 없다.

부엌에 앉아서 불을 때며 밥을 지으시고 지나는 사람들, 특히 걸인이나 봇짐장수들을 불러들여 적은 밥을 건네던 엄마,

당신이 드실 것은 없으면서도 봇짐장사들과 걸인들을 불러서 보리밥 한 그릇이라도 먹여보내던 엄마를 우리는 참 못마땅해했다.

 

가난한 집에서 넉넉하지 않았던 때 거리들,

보리밥을 양푼이에 가득하게 퍼서 전쟁처럼 덤비며 밥을 먹었던 때,

엄마는 왜 지나는 나그네들, 더럽고 추접스런 그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부엌에서라도 밥을 먹여야 하는지,

오롯이 우리식구끼리 밥을 먹은 기억은 정말 단 한차례도 없다.

그뿐인가 어데..

일곱명의 자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커지고, 이미 큰오빠와 언니는 서울로 가고 없었지만 가난은 그대로였던 탓에

끼니때면 외갓댁으로, 고모댁으로, 큰집으로 심부름을 보내 입 하나라도 줄이던 그 어려운 때에 어쩌자고 엄마는 보따리 장사들과 거지들을 불러 들였던지.

못마땅한 우리는 눈을 흘기며 "또.."를 연발하며 눈치를 주었건만 엄마는 '사람집에 사람이 와야 한다. 끼니때면 함께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치 주문처럼 외웠더랬다.

 

그렇게 정이 많고 깔끔하던 엄마는 53세, 지금의 나보다 일년전에 남편을 보내고 혼자서 먼 산을 바라보며 날마다 허리를 꺽이고 등을 휘며 손가락의 지문을 닳아내고 사셨다.

10년전 어느날 길가에 있는 집으로 자동차가 돌진을 했고 떠밀리듯 깔린 엄마는 시골에서 보기드문 교통사고로 병원에 몇달간 입원하시더니 퇴원을 하시며 병원에다 모든 힘과 기운들을 부려놓은채 힘없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오셨다.

하루아침에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가엽기도 하지만 딸이라는 당당한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마를 혼자일 때는 혼자로 밀어내고 2년전 오빠네로 가셨을 때는 또 오빠라는 이름에 밀어버렸다.

일년에 한두번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잊지 않을만치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역할을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11월에  성대수술을 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기로 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엄마와 며칠간이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 같아서 세현이를 데리고 엄마를 모셔왔다.

영천에서 단 한발짝도 가지 않으시려는 엄마에게 '보현(집)에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는 납치하듯이 모셔온 엄마,

2주간을 우리집에서 지낸 엄마는 옆에 사는 막내딸로 가셨다.(엄마를 모셔오자는 계획은 막내와 나의 합작품이다).

날씨가 추운 이유로 집안에만 계셔야 했고, 딸들이 직장에 가는 이유로 외손주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챙겨드리고 커피와 우유를 드리고 같은 말을 몇번씩이나 들어드리고 웃어드린 덕분에 엄마는 행복하다고 하셨다.

 

8일이 엄마의 85번째 생신이지만 주일에 서울에 사는 5남매가 모여 엄마의 생신을 축하했다.

큰언니와 작은오빠 부부, 작은언니네와 우리부부, 그리고 막내네까지.

주현이와 세현, 준경이와 규락이까지 모여서 할머니를 위해 축하노래를 부르고 할머니를 챙기는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지.

예배후 급히 달려와 현수막을 만들어 창문에 붙히고는 엄마에게 읽기를 시키는 센스까지..

 

식당에서 조촐하게 마련한 자리이지만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생신, 우리의 마음을 모으고 얼굴을 모아서 엄마에게 보여드리는 일,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다시금 가져보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 마음인지 엄마도 아셨으리라.

눈꺼풀 내리는 것 조차 귀찮으시다는 엄마,

살아계시는 날까지 건강하시길 빌 뿐이다.

 

'우리 7남매가 오늘까지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은 엄마가 베푼 그 마음때문이다'는 언니의 말이

지난날 투정부렸던 일들을 부끄럽게 한다.

'매일 그대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쥑일 ~~  (0) 2013.02.05
세현 출근  (0) 2013.01.07
성경암송대회   (0) 2012.12.11
蘭... 꽃이피다  (0) 2012.12.07
김장   (0) 201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