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문 희 지음 / 다산책방 펴냄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유가 반갑고 기쁘다.
17년간 '혼불'이라는 장편을 집필하고 홀연히 먼먼 곳으로 떠난 최명희선생,
그를 안 것은 '혼불'이라는 한편의 소설이었고, 책을 읽은 감정이 채사라지기도 전에,
남원의 대실마을을 둘러보고 싶다는 간절한 유혹이 사라지기도 전에 癌이라는 병마와 함께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신 분,
아직도 책꽂이에 꽂힌 책은 최명희라는 작가의 쓰지 못한 작품들을 아쉬워하는데..
몇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제라도 '혼불 문학상'이 제정되고, 그분의 뜻을 기린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된다.
앞으로 오랫동안 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혼불문학상이 내리내리 이어지길 간절하게 바래본다.
지난여름에 자매들과 함께한 강릉 경포대엔 백일홍이 유난히 많았다.
아니,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적에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강릉경포대에 들러 오죽헌과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림으로 일기를 쓰고, 위인전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하던 그때,
강릉의 길거리엔 처음보는 꽃이 나무에 대룽거리며 피어있었다.
나무줄기엔 희고 어룽진 몸피가 부스럼처럼 얼룩거리고 꽃은 특별한 모양보다는 자잘한 꽃들이 몽실거리며 피어있었다.
이상한 꽃나무를 들여다보다가 배롱나무이며 강릉의 시화임을 알았다.
그리고 주현이는 방학숙제에 배롱나무를 그려넣었고 방학이 끝나고 난후 상을 받았었다.
이후에 배롱나무가 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목백일홍이라고 불려짐도 알았다.
난설헌,
허초희,
시대를 어긋나게 태어난 죄, 조선에서 태어난 죄, 여자로 태어난 죄,..
그리고 재능이 뛰어난 것이 죄일 것이다.
벼슬을 하는 허엽의 막내딸인 초희에게는 오빠 허 봉과 동생 허 균이 한 어머니를 모시고 태어났으며 그들은 누구할 것 없이 글에 능하고 시어에 뛰어났다.
오빠와 동생은 일찌기 과거에 급제를 하고 선비로서의 겸양을 갖추었고, 재능이 뛰어난 동생과 누나를 자랑스러워했다.
공부보다는 숨어지내야 했던 시대, 재능을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혀야 햇던 무지했던 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고, 마땅한 남편임에도 내것이라 내세우지 못하던 그때,
오로지 참아야 하며 견뎌야 했던 야속한 시대에 태어난 초희.
결혼을 앞둔 날부터 이어지던 흉칙한 일들, 그칠줄 모르고 내리긋던 빗줄기,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은채, 품은 마음마져도 죄악인듯 하여 안으로만 치대어 밀어들이던 초희의 결혼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번번히 과거에 낙방을 하는 신랑 김성립은 공부를 하기보다는 기방출입과 술에 젖어 살았고
글과 함께하는 신부 초희를 감당하지 못한 김성립은 몸과 마음으로 그녀를 괴롭히고 학대한다.
남편이라기 보다는 강간범처럼 다가드는 남편과는 한마디의 대화도 이어지질 않았고
시어머니 송씨의 고약한 성미는 초희가 설 곳에 대한 조금의 틈도 주질 않는다.
시어머니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뻔뻔하고 두려움없는 구박과
지아비란 이름으로 버젓이 짓밟으며 빼앗아가는 육신과 영혼의 갈래들,
시를 쓰고 글을 읽는 것이 그녀의 휴식이었으며 희망이었고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글을 가까이 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망측하다며 서책을 뒤엎기 일쑤인 시어머니앞에서 그녀는 서서히 죽어간다.
내가 낳은 아이들을 마음껏 안아보지 못하고, 젖을 물리지도 못하는 현실들앞에서도 그녀는 원망하지 않고
모든것이 고여있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외할머니댁에서 요양을 하던 그녀에게 마음에 매인 최순치가 수연과 함께 찾아오고
터무니없는 밀고로 인하여 시댁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마는 초희.
이유는 알아보지도 않은채 천하에 몹쓸년이 된 그녀에게서 시어머니 송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아장거리는 소헌이와 젖을 물리는 제헌이까지 데려간 시어머니는 아이들를 초희로부터 빼앗음으로
초희에게서 삶의 모든 이유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한다.
어느날 소헌이 열에 들떠 숨을 거둘때에야 초희에게 건네고, 초희는 어린 딸의 죽음앞에서 오열할 수 밖에 없다.
소헌이가 죽은지 계절이 다시 바뀌기도 전에 동생 제헌이마저 죽게된다.
어린 딸과 아들을 잃은 초희는 담담히 어린 것들을 따라 나서기로 한다.
주변을 정리하며 곡기를 끊은 초희가 택한 것은 자식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선녀가 되어 훨훨 떠나가는 초희를 보며 나는 왜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난설헌,
시대를 잘못 태어난 곱고도 아름다운 여자 허초희,
지닌 것들이 많아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받고 그들로 인해 더욱 곤고해진 삶,
스물일곱의 나이로 피어보지도 못한채 한송이 꽃으로 떠나간 여자,
남편이란 이름으로도 그녀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부벼댈 언덕조차 되어주지 못한 남자로 하여금 외로웠던 여자,
가슴깊이 품었던 사랑으로 목마르고, 목마름으로 견뎌낸 시간들,
누군가 솟대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지켜 주었다면 훗날 우리는 얼마나 좋은 글들을 대할 수 있었을까.
책을 읽으며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누군지 모를 이에게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김성립이기도 했고 시어머니 송씨이기도 했고 덕실이에서 금실이로 바뀐 기생이기도 했다.
막힌 듯한 세상이기도 했고, 뿌리치고 떠나지 못하는 체면이기도 했다.
'혼불'을 읽을 때처럼 마음이 즐겁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때론 애닯기도 하고 절이기도 했다.
한 여자의 일생이 이토록 허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픔으로 다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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