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가 을
송 찬 호(1959, 충북 보은출생)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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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살을 태우는 듯한 남국의 햇볕,
뙤약볕 사이로 선들거리며 지나는 가을바람은 시원함 대신에
알러지를 데려와 콧물이며 눈물이며 입천정까지 긁적이게 한다.
인정사정없이 내리붓는 뙤약볕을 받으며
바알간 사과는 더욱 붉어지고
노란 배는 투명한 빛 속으로 단내를 들이키고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벼 이삭엔 무게가 더하여 종내 고개를 떨어트려
겸손함을 가르치는 가을이다.
풍성하고 넉넉한 가을에...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실의 가을은 이토록 냉담하고 혹독한 것인지.
얇아지는 주머니와 얇아지는 마음들,
웅크리고 웅크려 더는 웅크릴 수 없는 핍절함의 가을,
서러운 가을의 끝은 어디쯤일까.
따닥 튀어나오는 콩새 대신에
마음 어느곳에서 나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들숨과 날숨에 어느새 한숨이 자리하고 있는 가을..
.....................
건강함으로,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함께 존재함으로 감사한 가을이라 믿으며 또 믿으며...
가을입니다.
송찬호 시인의 수상을 축하합니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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