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많이 살았다.
'이게 결혼인가, 이렇게 결혼해도 되는걸까?
조금만 더 있으면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이 사람이 아니면 죽고 못살겠다는 마음도 아니고..'
좀체 결정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나를 대신해서 언니와 오빠와 동생들까지 결혼을 밀어부친끝에
바람이 몹시 심하고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에 결혼을 했었는데..
특별한 어려움 없이, 나름대로 고부간의 문제와 얄미운 시누이, 싸가지 없는 시동생과 동서 틈에서
날마다 더해간 악과 독한 마음이 결국 지금의 나로 만들어 놓고보니 어느새 세월은 28년이 휙~ 겨울바람처럼 지나갔다.
세월이 지나온 탓인지,
밉기만 하던 시어머니가 측은해 보이고 시부모님께 잘해야 내 자식이 나한테 잘하겠지하는 계산까지 나온다.
물론 아직도 시누이가 얄밉기도 하고 여전히 시동생과 동서는 싸가지 없기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이 세상에서 가장 팔자좋은 며느리가 '내 동서와 작은올케'라고 당당히 떠들어대는 나를
어쩌면 큰동서 값이라고 하겠고 어쩌면 못된 시누 값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설령 그런다고 할지라도 거둬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난여름, 정확히는 여름이 슬슬 뒤로 물러가고 가을이 슬금슬금 곁을 찾던 날,
인천공항을 통해 세현이가 네델란드로 출국을 하고 정확히 이틀후,
주현이는 짐을 싸 집을 나갔다.
서울에서 대학을 낙방하고 대전에 있는 대학을 갔을 때도 짐을 꾸렸고, 군대를 갈때는 빈 몸을 꾸려 집을 나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빠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아들은 결혼할때까지 곁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리라 여겼는데...
아들들이 떠나고 난 집은 텅텅 비어있어 바람이 불면 쏴아하는 바람소리가 들리고
비가 오면 방마다 빗물들이 가득하게 고인 듯 하다.
결혼기념일이 되면 늘 여행을 떠나곤 했다.
1박2일간 동해안을 찾아 겨울바다를 만나고 바다속에 들어앉은 하얀파도를 만나고, 파도위를 날으는 겨울철새를 만나고
떠난 길 위에서 돌아올 길을 만나곤 했는데 이번엔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마음편히 여행가는 것보다 밀려드는 일감이 더 반가운건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알 것이고, 특별히 내 것일 때 당연하다.
주중에 있을 시아버님의 생신, 다음주중에 있는 친정엄마의 생신, 주일에 있는 총회...
결국은 에코니스에서 저녁식사를 함으로 결혼기념일을 마무리했다.
요즘 함께 일을 하니 불편한 것이 너무나 많다.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하루종일 함께 일하는 것인데.. 쩝~~
단점만 보이고 실망만 커져가는 날들이다.
결혼기념이리라는 설렘도 없고 기대도 없고..
에이... 내가 늙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