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이틀째!!
어젯밤에 약속한 8인승 택시가 8시에 10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1분이라도 아끼기 위해, 한 곳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시간을 지킨 우리는 일찌기 준비하여 새마을금고 연수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경찰아저씨를 불러 찍었다. ㅎㅎ
밤새 연수원에 무슨 불미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경찰들이 계시기에 '사진 좀 찍어달라'고 과감하게 부탁하는 나를 일행들이 놀랍다는 듯이 웃는다.
오늘의 일정은 15코스이다.
숙소에서 가깝다는 이유는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우선이다.
한림항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시는 기사분이 제주도에는 잡신이 굉장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바다일을 많이 하는 해녀들과 배를 타는 남자들이 무엇이든 기대고 빌고픈 마음이 이유이리라.
가는 곳마다 돌탑이 쌓여있고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것만봐도 얼마나 많은 神들이 극성인지를 알 수 있다.
육지에서 아이를 낳으면 괜찮은데 제주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반드시 아프고, 그 아이를 고치려면 무당에게 가서 침을 맞아야 낫는다는 이유로 교회다니는 여자들도 반드시 무당에게 가서 침을 맞힌다니... 서글픈 일이다.
장학봉목사님이 '교회를 다니지 예수를 믿지 않아서'라는 말씀이 가슴시리도록 사무친다.
한림항에 도착하여 '비양도'에 들어가는 배편을 알아본 것은 다리가 아파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이다.
9시10분에 들어가면 오후 3시가 되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과 오늘은 파도가 심하여 배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예정대로 15코스를 걷기로 한다.
한두방울 흩뿌리는 빗속이지만 걷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는데 평내에는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춥다고 하고, 제천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고 하니...
15코스는 한림항을 시작으로 제주도 마을길과 들길로 이어진다.
낮으막한 돌담을 끼고 집과 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때론 잔디가 대문앞까지 깔려있고 잔디밭 가장자리엔 꽃잔디가 어여쁘게 피어있어 제주도에 남고싶다는 마음을 강렬하게 유혹한다.
집집마다 노랗고 굵은 한라봉이 매달려 있고 약속이라도 한듯이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 마치 빈집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논은 구경할 수가 없는데 장순태집사님이 걱정이 되시는가 보다.
'제주도 사람은 논농사는 안짓는가봐요. 뭐먹고 살지요?'라며 특유의 강원도 억양으로 걱정을 하신다.
'대신 밭농사가 많잖아요. 보이는 것이 모두 밭이고 농작물이 풍성하니 그것으로 생활하겠지요'라며 대답을 하는 김용순권사.
두분의 조용한 대화를 들으며 역시 남자들이 보고 느끼는 것과 여자들이 느끼는 것의 차이를 느껴본다.
반질거리며 머리를 내민 양배추, 무더기로 뽑아져 있는 양파, 거두어간 자리에 이삭처럼 떨구어진 콜라비, 쫑을 자른 마늘은 뿌리로 영양분을 내보내고 바닷바람에 훠이훠이 흔들리는 청보리는 무성하기만 하다.
밭둑을 지나며 통통해진 찔레를 꺽어 먹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고사리를 꺾기도 하고, 길가에 잡초처럼 무성한 당아욱도 한줌씩 뜯기도 한다.
검은 흙으로 일구어진 밭, 역시 검은 돌로 쌓아진 담, 얕은 집들이 바람에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돌들마다 구멍이 쑹쑹 뚫어져 있다.
밭길과 마을길을 걸으며 서로를 알아가며, 뒤에 쳐지기도 하고 앞에서 기다리기도 하며 걷는 길은 올레길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선운정사를 지나니 평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조립식 공장건물이 두어동 보이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초고속으로 달려가 처마밑에 몸을 피하는데 봉고차가 지나다가 우리앞에 멈춘다.
'버스타는데 까지 모실테니 어서 타세요'라고.
어쩌면 하나님은 이렇게 철저하게 예비하시는지, 믿기지 않는다.
걸으면서 차를 구경하지도 못하고 사람구경도 할 수 없었는데 비를 만나고 피할 곳을 찾을까 싶은데 차를 준비하시다니.
정녕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사분께 조심스레 애월까지 태워다 주실 것을 요청했다.
마음이 넉넉한 아저씨가 거절치 않으시고 잠시만 기다리란 대답에 식사나 하겠다고 하니 마침 아저씨네 집이 작은 식당이다.
'초롱이네' 식당에서 백반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하는데 아저씨의 말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시다.
기름값이라며 3만원을 드리는데 고사리에 대한 강의가 있으니 들어보시라고 한다.
조금 지나친 것 같아서 경자집사와 함께 숙소로 올라 쏟아지는 비를 커다란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본다.
지난밤 잠을 설친 것을 이유로 꿀맛같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비가 그쳐있다.
지하로 내려가 구경을 하고 경자집사가 과자 한보따리를 사다가 풀어헤친다.
길지 않은 다리를 꼬고 앉아 과자를 먹으며 아줌마들의 수다를 한소큼 풀어내고 산책길로 나섰다.
산책길을 걸어가는데 고사리가 보인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모두가 고사리를 꺾으러 산으로 들어간다.
뿔뿔히 흩어져 고사리를 꺾으며 천금같은 오후를 보내고나니 후회하지 않을만치의 소득이 고사리로 남는다.
숙소에 돌아오니 왕소춘권사님이 오전에 뜯어온 나물을 삶아 무치시고 저녁준비를 하신다.
불고기와 어제 꺾은 고사리를 볶고 오전에 뜯은 나물을 무쳐 식사를 하니 이또한 꿀맛이다.
집집마다 즐겨 부르는 찬송가를 적고 예배시간에 6곡을 부르고나니 목이 아프다.
장로님이 성경을 읽으시며 뜨거운 감동을 느끼셨다고 갈라디아서 6장 1절~10절을 함께 나누셨다.
여행의 소감을 나누며 각 가정의 어려움과 기도제목을 나누니 곁에 앉은 분들이 마치 가족처럼 느껴진다.
성령의 충만함을 느끼며 남자들이 숙소로 돌아간 후, 우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노래방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다.
오로지 교회밖에 모르는 분들이 무슨 노래를 부를지, 한시간을 어떻게 때울지..
아니나다를까,
서울의 찬가, 사랑해 당신을, 과수원길, 개똥벌레...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처럼 꼿꼿한 자세로 정면을 향하여 흐트러짐 없이 열창하시는 박영자권사님,
고운소리로 서울의 찬가를 부르시는 왕권사님,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는 노래는 없고, 어쩌다 선곡을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국어책을 읽어대는 이경자집사,
역시 국어책을 읽어대는 곽남숙집사는 듣지 않는 몸을 흔들어 보느라 애쓴다.
그나마 김용순권사가 두세곡을 부르며 본전생각을 덜어주고,
레퍼토리가 뻔하여 노래방 가기를 싫어하는 내가 그중에 최고다.ㅋㅋ
선곡을 하고도 끝까지 부르지 못하는 노래를 채우느라, 국어책을 읽으며 필요한 부분도 아닌데 소리를 질러대는 집사님들,
정말 이분들이 평내교회에서 찬양대를 몇년씩이나 섬긴 분들이 맞는지? 그런 걱정을 하며 나는 바닥을 굴렀다.
그것도 몇바퀴를..
왕권사님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박권사님의 투정에 잠자리가 바뀌었다.
서로가 양보를 하는건지, 코고는 소리 때문에 예민해서 잠을 못잤다는 원망 때문인지, 결국 침대는 내 차지가 되었다.
밤은 깊어가고 두런거리는 소리는 여전하고, 이미 잠이든 박권사님도 쌕쌕거리며 코를 골고.. 뒤척거리는 나는 갱년기의 중병을 다스리지 못하여 잠을 설치고.. 좀전에 너무 웃은탓인지 배가 살살 아프다.
뒤척거리는 몸을 싸고있는 침대보의 서걱거림과 잠이 깰세라 조심하며 두런대는 고운 말소리에 묻힌 제주의 둘째날 밤은 아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썩이는 파도위로 제주의 새벽을 몰고오며 다시 깊어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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