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여디디아 2007. 11. 27. 18:35

지난 토요일,

오랫만에 포근한 겨울날씨라 퇴근후에 걸어서 집에까지 가기로 했다.

쉬는 토요일이지만 회사일이 바빠서 출근을 했고 오후 3시쯤에 퇴근을 했다.

바쁜 일도 웬만큼 마무리 되었고 오랫만에 거리를 걷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침저녁 오가며 보았던 길가의 낙엽들마져 이미 부서질대로 부서지고 날릴대로 날리워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몰려 있는 거리는 겨울햇살만이 화사할 뿐이다.

겨울햇살아래 드러난 거리는 투명하다 못해 속살까지 비춰질 듯하다.

적당한 체온을 유지하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고 월급날이라 기분까지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소녀처럼 즐겁기만 하였으니..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회사에서 출발한 시간이 한시간이 다 되었고, 집에까지 도착할 시간은 5분정도의 거리,

평소 좋아하던 길이라 나도몰래 사뿐사뿐 걸어가는데 저만치서 바바리르 입은 남자가 마주 걸어온다.

40대초반의 남자, 키도 적당하고 몸도 훤칠하고 나름대로 봐줄만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선한 웃음을 웃어온다.

'이거봐라'... 나도몰래 경계심을 가지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지나는 자동차는 요란하건만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이럴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마음에 웃음까지 머금고 마주 바라보니..

 

"저어기, 실례하겠습니다. 길을 좀 여쭙고 싶어서요"

수줍은 듯이,  낯선 곳에서의 나그네의 절실함이 묻었다.

"예, 말씀하세요, 어디를 가시는데요?"

"저 마석역으로 가면 강원도 인제나 원통으로 가는 기차가 있는가요"

"아, 예, 마석역에 가면 인제나 원통으로 직접가는 기차는 없고 춘천가는 기차는 있어요.

 아마 춘천에 가시면 인제가는 버스가 자주 있을겁니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참, 여기서 커브만 돌면 육교아래가 시외버스 정류장인데요. 거기는 춘천가는 버스가 20분마다 있으니 거기서 타시면 편하실 겁니다"

그리곤 돌아서 가는 나를 다시 붙잡는다.

 

"죄송하지만 이 동네에 사세요?"

"예"

"저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인데 어제 친구집 집들이에 왔습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니 정신을 잃은것 같습니다. 친구네 집이 이 근방인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친구가 가방과 지갑을 모두 빼앗아 가고 하루종일 전화를 받질 않습니다, 

다음주에 동문회가 이쪽에서 있는데...."

"............."

"제가 상봉동에 전화를 했더니 상봉동에서 인제까지 교통비가 6500원이라고 하는데 좀 빌려 주세요. 절대로 구걸하는 것은 아니고..."

순간, 참으로 많은 거짓말들이 떠오른다.

차비가 없어서 사정을 하지만 뒤돌아서서 술을 마시고 킬킬대는 사람들,

그런 방법으로 돈을 뜯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혼란스럽다.

지금와서 돈 없다고 돌아서기도 어렵고, 정말 이 사람이 차비가 없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결국 지갑을 열어 만원을 꺼내 드렸다.

다음 일요일 2시에 이곳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괜찮다고 하는데 남자는 주먹으로 자꾸 얼굴을 두드린다.

그 모습이 순수하게 보여지는만치 거짓이 아니길 바래본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끝끝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서 휘익 사라지는 바바리맨,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 한켠이 찜찜한건 왜인지.

양구에서 동서울까지 오는 버스비가 군인으로 12000원을 하는데...

휴가를 나오던 아들의 버스표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그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모른다고 돌아섰을까,

아마 나처럼 모두가 만원을 내밀며 가족들이 기다리는 따스한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길 바랫으리라.

 

겨울바람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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