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새벽촛불

여디디아 2005. 2. 26. 21:55

새벽촛불

 

 

차 주 일(1961~         )

 

 

새벽촛불이 제 몸을 숫돌 삼아 빛을 갈고 있다

뇌천을 마모시켜 만든 확 하나이고, 천상에서 정화수 긷고 있다

정화수 한 사발 내려놓는 가장 완전한 치성은 목욕재계한 자신을 번제(燔際)하여

바치는 일이었으므로 주위를 비춰 본성을 감춘 죄.

제 갈아낸 서슬로 제멱을 딴다 연기가 유필(遺筆)하는 상형문자들,

여백이 된 길 더듬어 돌아가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유서를 쓰는 가장 긴 삶을 읽는다

하늘이 바람을 시켜 천기 누설을 지운다

탯줄 묶는 어머니 손을 설핏 보았으나, 제단 위 태(胎) 한 더미만

화석처럼 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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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전 오늘,

스물을 막 건너와 서른을 맞은 까만 머리에

흰옥양목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셋째 딸을 해산하기 위해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고 태우고, 자신을 버리고 버렸으리라.

내가 녹아 너를 살리려,

내 몸에 고인 피를 흘리고, 탯줄에서 끊어지는

새로운 생명을 위해 치열한 고통과 싸움했으리라.

겨울바람은 모질게 문풍지를 흔들고

새로운 생명은 아들이려니,

셋째 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셋째딸을 낳았을 때,

그때 엄마는 절망했을까?

아니다.

셋째딸을 낳은 엄마는 여전히 기뻤으리라 ..

내몸을 빌어, 탯줄을 끊은 자리에 배꼽이 열리고

칭칭 감은 배꼽아래로 빈약한 몸을 드러내 보이며

앙앙 울어댔을 아가를 자랑스러워 했으리라.

생일을 맞은 오늘,

유난히 몸이 아픈건 그날 엄마의 고통이

촛불처럼 뜨거웠음을 일깨우기 위함일까?

살을 에는 추위보다 더 큰 고통으로

오로지 너를 위하여 나를 태우고 태웠던 어머니,

내게 당신은 새벽촛불입니다.

새벽촛불앞에 놓인 정화수입니다.

정화수앞에 비비는 굵은 손가락입니다.

당신을 내 어머니이게 하신 하나님,

결국은 그 분의 특별함이며

제게주신 특별한 축복입니다.

살아있게 하시고

나를 나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은 분명, 특별한 날입니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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