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 철(1959~ )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 슈퍼 앞에 섰다가 후드득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마디가 아내의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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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자전거를 타고 아내의 심부름으로 돈 4만원을 주머니에 찌른 사나이의
후줄근한 형상이 그려진다.
오늘처럼 비가 후드득 떨어지겠고
영진설비라는 가게엔 주인없는 빈 문이 덩그라니 사나이를 맞이하고..
비를 피하다 맥주 한잔을 마시고
돌아서는 눈길에 밟히는 자스민 한 그루..
덜컥 치미는 애증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스민 한 그루를 샀으리라.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가 선생님으로 부터 벌을 서는 기분으로
뻘줌하게 아내의 치맛자락을 잡고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바라본 그 사나이,
어쩐지 그 사나이를 안아주고픈 마음이다.
고단한 우리네 삶속에서 자스민 한 그루 살 줄아는 남자가 있다면
어이 사랑하지 않을수 있으리.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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