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여디디아 2005. 8. 8. 10:13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   철(1959~        )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 슈퍼 앞에 섰다가 후드득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마디가 아내의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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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자전거를 타고 아내의 심부름으로 돈 4만원을 주머니에 찌른 사나이의

후줄근한 형상이 그려진다.

오늘처럼 비가 후드득 떨어지겠고

영진설비라는 가게엔 주인없는  빈 문이 덩그라니 사나이를 맞이하고..

비를 피하다 맥주 한잔을 마시고

돌아서는 눈길에 밟히는 자스민 한 그루..

덜컥 치미는 애증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스민 한 그루를 샀으리라.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가 선생님으로 부터 벌을 서는 기분으로

뻘줌하게 아내의 치맛자락을 잡고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바라본 그 사나이,

어쩐지 그 사나이를 안아주고픈 마음이다.

고단한 우리네 삶속에서 자스민 한 그루 살 줄아는 남자가 있다면

어이 사랑하지 않을수 있으리.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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