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15일
일년중 가장 달이 크고 밝다는 대보름이다.
어제는 불린 찹쌀과 얻은 나물을 볶으며 대보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결혼 22년동안 딱 한번 땅콩과 부럼을 사왔던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작년 대보름날 아침, 어쩐지 보름날아침을 그냥 보내기가 허전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와자작하고 부럼을 깨트린다고 해서 귀가 밝아질리도 없고, 낮술을 한잔 기울인다고 귀가 열릴수도 없다는걸 알고 있다. 가뭇한 김에 밥을 사먹어야 부럼이 나지 않는다는 말도 믿질 않지만, 그저 사람이 사는 냄새이며 다정한 모양새라 여겨지기에 난 오랜습관들을 좋아한다.
식구들이 마주보며 딱딱한 부럼을 깨무는 모양도 보고싶고, 주현아 세현아를 부르며 내 더위를 뒤집어 씌우는 모습도 그저 보기에 좋을 뿐이기에 부럼을 부탁했었다.
퇴근후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텔레비젼에 눈을 주고 웃음을 주고 있다.
부럼을 사왔느냐는 내 말에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마치 아무것도 아니란듯이 사오지 않았다고 한다.
순간 어이가 없어진다.
일부러 문자까지 보내어 부탁했음에도....
그 성의없음이 기분나쁘다.
이렇게 살아가는 코드가 달라서야...
부럼 한봉지 사오지 않은 남편으로 인해 어제저녁 내내 기분이 나빴고, 결국 세현이를 통해서 분출하고야 말았느니..
나도 참 못되고 못난 인간임에 확실하다.
대보름이라고 오곡밥을 두 솥이나 지어 이웃과 나누어 먹으려는 내 마음에 구정물을 확 끼얹는 못난 남편, 다섯가지 나물을 볶아 도시락에 넣어 오곡밥과 함께 챙겨주는 내게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들고가는 남편.. 아무리 생각해도 저 남자에게 난 지나치게 과분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에고 신경질나고 짜증나..
자취하는 총각들을 위해서 밥을 담고 나물을 챙기고, 옆에 있는 동생을 위해서 밥을 푸고 나물을 챙기는 내 손길에 복 있으리라.
쫀쫀하고 치사하게 부럼 한봉지 사오지 않는 남편은 필요없다.
그럼에도 아침식탁에서 하는 말..
'밤이랑 은행 넣은 영양밥 먹고싶다'..
'에라 여깄다 곶감아!!'
대보름, 남편이 땅콩 한봉지로도 보이지 않는 기분 나쁜 날이다.
'매일 그대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축하 송~~여디 선배님 ㅎ ㅎ (0) | 2005.02.26 |
---|---|
건강.. (0) | 2005.02.25 |
2003년 5월에 (0) | 2005.02.22 |
2003년 5월 16일 (0) | 2005.02.22 |
2003년4월30일 (0) | 2005.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