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펑펑 쏟아지던 눈이 오늘 반질반질한 빙판길을 만들어 놓았구나.
대보름날이라 달이 뜨기도 전에 하얗게 남은 눈들로 하여금 아침부터 휘영한 날이구나.
세현아!!
오늘아침 너를 대하는 엄마의 얼굴이 얼마나 뻔뻔했는지 아니?
차마 너를 마주볼 수 없어서 다른 날 같으면 식탁에 앉아 밥먹는 너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으련만 오늘은 텔레비젼에다 눈을 주고 있었단다.
성급하게 양치를 하고, 여전히 머리를 만지고, 점퍼를 입고, 가방을 챙기는 네 뒷모습에다 겨우 한다는 말이 '핸드폰 챙겼어? 지갑은 찾았어?' 였단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어제와 똑같은 말소리로 인사를 하는 네 뒷모습에서 내가 네게 보낸 인사도 어제와 같았을까?
아무래도 떨었던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면목이 없고 부끄러워 출근하자마자 문자를 보냈다.
엄마를 용서하라는 문자에 너는 이렇게 답을 보냈구나.
'아니야 신경쓰지마 나 괜찮으니까^^ 나도 사랑해'...
세현아!
네 글을 보니 난 더욱 작아지고 미안해진다.
정말 어제는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것 같다.
왜 그렇게 화가 났던지..
아마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나를 화나게 했던것 같다.
이틀간 몸이 아파서 불편한 것도 화가 났고, 대보름이라고 모처럼 땅콩 한봉지 사오라는 엄마의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 아빠한테도 화가 나고..
네가 고3이라는 사실임에도 느긋하게 보이는 태도 또한 화가 났었고 말이야.
세현아!!
열심히 하고 있는 너에게 엄마가 억지를 부리나보다.
결국엔 엄마의 욕심일 수 밖에 없음에도..
엄마의 발작같은 시간을 들으며 책상앞에 앉은 네 눈에 글씨가 글씨로 들어왔을까.
참 부끄러운 엄마의 모습이구나.
세현아!
미안하다.
이제 그런 일은 없을거야.
너도 일년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랜다.
내년 이맘때 우리 오늘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쯤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을 너를 생각한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너를 생각하니 다시금 내가 부끄러운 아침이다.
정월대보름,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보며 너를 위해 기도해야겠구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