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늘수록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와 내 몸이 노후되어가는 속도가 눈에 보인다.
아무리 젊어 보여도 몸은 몸이 말하고 남은 나의 몸을 알지 못한다.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되면 나도 모르게 굳어지는 몸, 자유롭지 못한 팔다리, 의지와 상관없이 곧게 펴지지 않는 허리,
발딱 일어서고 싶은데 입에서 신음이 먼저 나오는 기이한 현상은 '나'를 놀라게 하고 그런 '나'를 때로 서글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이라는 말로 산으로 들로, 캠핑으로 등산으로 휘젓고 싶은 것은 생활을 즐기고 싶은 욕심인가,
인생을 즐기고 싶은 욕망인가.
자라섬 캠핑은 꽤 괜찮은 취미생활이다.
거리가 가깝고 예약하기가 쉽고 캠핑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현충일에 언니네 가족과 같이 다녀왔는데 이번 캠핑은 인아와 지유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다.
'늦기 전에, 늙기 전에'라는 주제를 정하고.
인아와 지유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할머니가 좋다'라고 할 때,
할머니네 집에만 오면 엄마아빠를 찾지 않아도 좋을 때,
이럴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지혜롭다.
'무엇이든 기회가 될 때 잡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결정과 동시에 인아에게 전화를 하고 역시 흔쾌한 인아와 약속을 했다.
지유를 계획에 넣지 않은 것은, 지유가 있으면 때로 인아가 질투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잘 보살피면서도 때로 귀찮아하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유가 아직은 어리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아가 지유도 함께가자는 말에 반가움이 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6월 25일,
등촌동에서, 용인에서 출발한 아들들이 비슷한 시간에 자라섬에 도착을 하고, 남도 꽃 축제가 한창이라 인아네는 꽃 축제를 구경하고 지유네는 꽃축제장은 들어가지 않고 자라섬을 한 바퀴 돌고 캠핑장으로 왔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새로 구입한 텐트와 펭귄이 그려진 매트로 텐트를 설치를 하고나니 아이들이 찾아든다.
주말이라 경춘국도가 얼마나 밀리는지 알고 있는지라 아침을 굶고온 아이들과 자라섬 입구에 있는 닭갈비집으로 가서 닭갈비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작은아들이 식사 중에 계산을 했다.
식사 후 계산을 하려던 큰아들이 동생이 계산을 마친 것을 알고 옆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로 더위를 식히게 하는데 인아는 부모들이 빨리 집으로 가라고 등을 떠민다.
6월이 뒷걸음질 치고 7월이 앞을 넘보는 날, 더위는 기승을 부린다.
한낮의 땡볕도 두렵지 않은 인아는 놀이터로 가자고 보채지만 해님의 왕성한 기운이 한풀 꺾일 때까지 기다리다 5시가 넘어서 중도로 들어섰다.
평소에 눈여겨본 동물의 기형물앞에서 인아는 해설사가 되고 지유는 말을 잘 듣는 학생이 된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체험까지 해보는 인아와 지유를 바라보며 초록 초록한 들판에서 꾸밈없이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의 자유함에 충만함이 차오른다.
저녁을 먹고 텐트 속으로 들어가도 꼬마아가씨들은 잠을 잘 줄 모르더니 9시가 되자 지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고 잠이 오지 않는다며 엄마 아빠와 통화를 하던 인아는 30분이 되니 잠 속으로 빠졌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소리와 풀벌레들의 소리와 온갖 새들의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깬 아이들이 새 보다 더 맑은 소리로 재잘거린다.
삶은 계란과 블루베리로 새벽 참을 먹은 후 달전천을 걸으며 아침산책을 하는 여유를 누린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개울물이 풍성하고 때맞추어 피어난 노란 금계국과 돼지감자꽃이 한창이다.
깨끗하고 청랑한 아침공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아이들에게 내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재물이 아니고 이런 아름다운 마음과 감성이다.
훗날 할머니를 생각하면 캠핑장에서 함께 먹고 웃던 생각과 뒹굴던 생각, 그날 보았던 하늘과 구름, 그날 들었던 새소리와 물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시간마다 요란하게 지나가던 경춘선의 전철과 itx의 기차소리, 기차가 지날 때마다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던 모습,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라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늦기 전에, 늙기 전에,
천사들과 함께 한 캠핑,
비록 쭉 뻗어서 기절한 저녁이 되었지만 행복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