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
김 숨 / 은행나무
2020 동인문학상, 요산 김정한 문학상 수상작!
김 숨의 글은 사실에 근거화여 쓰인 글이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흐르는 편지'가 그랬듯이 '떠도는 땅' 역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다.
가난으로 인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내가 알지 못하던 옛날에, 러시아에 가면 땅을 나누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먹고살기 위해 땅이 있는 러시아로 찾아들었던 조선인들,
처음엔 러시아에서 땅을 나누어 주었지만 사람들이 몰려들자 땅을 분배하지 않았고,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땅을 얻어 농사를 짓는 조선인들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떠도는 땅'은 연해주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조선인들이 어느날 모든 것을 두고 페르바야 레치카역에서 열차를 타고 목적지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긴 여정을 소개한 글이다.
연해주 신한촌이란 마을을 일구어 양과 소와 돼지와 닭을 키우며,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삶의 터전이 안정되어 가는 그들에게 러시아 정부는 무조건 떠나라고 명령한다.
키우던 짐승과 기르던 곡식들을 그대로 둔채 떠나게 된 사람들,
장사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금실은 뱃속에 아기와 시어머니 소덕과 함께 열차에 오른다.
열차라고 하지만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이어서 열차 안에 짚을 깔고 난로를 피워 온기를 나누고 물동이에 있는 물을 조금씩 마시고 열차가 서는 곳에서 뛰듯이 달려 나가 생리현상을 해결하곤 한다.
열차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 부모님의 이야기와 러시아로 이주한 이야기,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와 자식을 키우며 겪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같은 주제일 수밖에 없다.
현재 내 삶의 이야기와 다름이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슬프고 아프고 힘겹다.
역한 냄새가 공기를 지배하고 굶주린 뱃속은 슬픔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머리에서는 이와 서캐가 들끓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목적지는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을 처참하게 보여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름도 짓지 않은 요셉과 띠냐의 아기가 죽어 열차 밖으로 던져지고, 열차가 정차한 틈에 열차 아래에서 볼일을 보던 금실의 시어머니 소덕은 보이질 않는다.
소년인 아나똘리는 소년에서 중늙이 처럼 생기를 잃어가고 아무것도, 아무도 가진 것 없는 풍도와 인설은 삶의 의미도 잊은 채 방관하듯이 흘러간다.
한 달 이상 걸려서 그들이 내려진 곳은 콜호스로 사람이 죽어나간 곳이며 싸락눈이 덮인 구릉과 시든 갈대밭뿐이다.
그곳에서 구걸을 하고 아기를 낳으며 다시 살기 위하여 흙을 일구며 씨앗을 뿌릴 그들이 가슴 아프다.
아가에게 젖을 물려도 젖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참혹한 금실에게 인설이 찾아와 오리를 내놓고 금실은 인설의 옷에 단추를 달아주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가슴에 붙은 뼈가 봄날 아침 얼음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김숨의 예리한 표현과 문장이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