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들
토끼띠들
돼지띠들
쥐띠들
지난 봄, 금곡릉에서 진달래꽃 구경을 하면서 이번 가을에 인제자작나무숲으로 가을소풍을 떠나자고 약속을 했었다.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은 져야하는데 여름은 지독히도 더워서 멀쩡한 사람을 쓰러지게 하고, 팽팽하던 숨 줄마져 끊어 놓기에 이대로 영영 가을이 오지 않는거나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변함없으심으로 때가 되면 정확하게 계절을 바뀌게 하시고 폭염도 밀어내신다.
시원하가 싶더니 바람마져 독기를 품은듯이 차가워지는 날, 달력을 보니 빨간 숫자가 드문드문 심심찮게 들어 있다.
하루라도 늦으면 누군가가 그 날을 나꿔챌 것만 같아서 개천절에 가을소풍을 가자고 선포했다.
9월 둘째주일 오후예배 후 월례회 시간에 개천절에 자작나무숲으로 가을소풍을 떠나기로 회의록에 기록을 하자마자 문권사님이 찬조라며 10만원을 선뜻 쥐어주심으로 소풍에 대한 기대와 부담이 확~ 달려든다.
토요일에는 봉사부장님을 비롯해 권사님들이 차례로 봉사를 해야하는데 우리 여전도회가 가장 많다는 이유와 토요일마다 치루어지는 예식으로 인해 참석할 수 없는 회원들이 많을 것 같은데 공휴일은 이제 우리에게는 별 볼일이 없다는 사실에 참석인원이 많아 괜히 기분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풍선처럼 두둥~~실이다.
그렇다.
약속을 해놓고도 날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
20명이 넘던 숫자가 20명으로 다시 18명으로 다시 16명으로, 출발하는 아침에는 15명이다.
참석하지 못하지만 찬조로 동참해 주신 김성희 강영분권사님, 견과류를 봉지 가득하게 담아서 여유있게 준비해주신 고영순권사님, 간식을 대접하고 싶다며 수줍게 봉투를 내미는 안병임집사님과 이른아침의 모닝커피로 우리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준 평내 이디야의 최대한 점주는 전위진권사의 장남이자 세현이의 불알친구이다.
생각지 못한 찬조들이 들어옴으로 가을소풍은 물질로 더욱 풍성하고 물질이 풍성하니 마음은 이미 비만이다.
찰떡을 주문하고 아침식사로 소고기 떡갈비로 만든 봉구스밥과, 물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삼다수와 농산물시장에서 가장 맛나다는 사과를 김은희 권사님이 고르고 소풍간다는 마음에 들뜬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계란 40개를 삶았다는 사실이다.
성집사님께 부탁한 미니버스는 계획한 시간보다 2분 늦게 교회를 출발하여 청평에서 문숙민권사님을 만나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을 지나 인제자작나무숲으로 향했다.
아침내내 자욱하던 안개가 걷힌 자작나무숲에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탐방로 입구까지 2.5키로를 걷는데 모두가 속은 기분이라고 아우성이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자작나무가 줄지어 늘어서서 기다리고, 평평한 길을 룰루랄라 걸을거란 기대를 하고 왔는데 현실은 등산이라고...
이런 반응을 예상했으므로 굳이 탐방로 입구를 설명하지 않은 나의 속내가 이제서야 들킨다.
동생과 답사를 왔을 때는 연둣빛의 나뭇잎이었는데 그새 뒤집기 직전의 지짐이처럼 노릿노릿해져 단풍으로 변하고 우둑우둑 솟은 자작나무의 흰 몸피와 검은 형체들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떼창속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자작나무가 내려다보는 숲에서 발을 들기도 하고 손가락을 꼬기도 하고, 커다란 하트도 만들고 굵은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보기도 하며 우리를 지배하던 부엌과 식탁과 세탁과 청소와 행여 저녁식사는 차려주실테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나에게도 인생이 있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외박을 할 수도 있고 장거리 여행을 할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서 자유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나이별로 모여서 사진을 찍으며 내년에 7여전도회로 올라갈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는 내 말에,
"저희도 6여로 올라올 때 그런 마음이었어요"라며 홍현숙권사가 일침을 놓는다.
맞다.
나만 모르는 '내'가 있다.
나는 아직도 30대이든, 40대이든 50대이든 어디든 어색하지 않고 담담히 스며들 것이란 교만은 대체 어디서 들어온, 누가 얹어둔 자만심인지 모른다.
나만 몰랐던 '나'를 발견함으로 겸손을 배우며, 7여전도회에 올라가는 것이 내게 맞춤형이란 것을 세뇌시켜 본다. 아~~~
자작나무숲을 한바퀴 돌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로 누리게 하시며 즐기게 하시고 후손에게 물려주게 하시는 하나님의 질서를 찬양하며 준비된 평상에 걸터앉아 준비해 온 떡을 먹기도 하고, 삶은 계란을 먹으며 목이 메기도 하고, 아삭한 사과를 먹으며 사과의 달콤한 같은 달콤한 시간을 누려보는 여유가 대체 얼마만인지.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도 짧은 거리가 아니다.
곽남숙권사와 문숙민권사가 다리가 아프다며 괴로워한다.
한때 다람쥐처럼 산을 누비던 곽권사는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 있어서 별무리없이 내려오는데, 얼굴을 보면 토끼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권사가 3년전 종기로 인한 수술을 한 다리가 걸을 때마다 신경이 눌러 힘들어 한다.
처음에는 엄살이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으로 어그러지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
김흥란권사와 박현숙집사와 함께 뒤에 남아서 문권사와 내려오는데 정말 힘들어 한다.
119를 부르니 인제에서 30분 걸린다고 하고, 택시를 부르려니 역시 인제에서 출발을 해야하며 바퀴가 달린 차는 이 곳으로 올라오지 못한다는 안내소 직원의 책임없고 무뚝뚝한 대답이 화를 불러 일으킨다.
가끔 드나드는 자동차는 윗동네에 주거하는 주민들이라고 하면서도 환자를 위한 대책이 전혀 없으니 아연할 뿐이다.
혹시모를 상황을 대처하지 않고 책임만 회피하며 오로지 숲만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엇이 우선인지를 잊은 듯하다.
아무리 자작나무가 소중하고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더 소중한 것이 사람이며 생명인 것을...
하산길 900m를 남겨두고 자동차가 지나길래 환자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하니 고개를 흔든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그냥 지나치는 차를 가로막아도 뒷좌석에 앉은 여자는 아이만 끌어안은채 미동도 않는다.
앞서가던 젊은 부부가 환자라며 합세를 하자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 매몰차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외면하는 세상... 혹시 우리 잘못은 아닐까?
늦은 점심을 위해 학곡사거리 닭갈비에서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닭갈비를 구워놓음으로 늦은 점심을 볶음밥과 막국수와 시원한 사이다까지 곁들여 먹고나니 만삭의 몸처럼 일어나기가 힘든다.
폭염이 지나고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가을의 초입처럼, 지금 우리인생의 때도 그만치일까?
아름답고 멋지게 익어감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의 열매를 맺는 6여전도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앞과 사람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순결한 신부들이 되길 소망하며 육신으로 남아있는 날은 늘 건강하기를 바래본다.